"롯데 선수단 분위기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좋아요. 다들 잘해줘요. '적응'이라는 단어를 꺼내기 민망할 정도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장성호(36)의 목소리에는 편안함이 묻어났다. 프로 18년차를 맞은 이 베테랑에게선 '이적생'들이 흔히 겪는 압박감은 느낄 수 없었다. 작년 말 트레이드를 통해 한화에서 롯데로 옮긴 장성호는 일본 가고시마 스프링캠프에서 훈련 중이다.
장성호는 이달 초 대전에서 살던 아내와 딸(11), 아들(8)을 모두 부산으로 불러들였다. 초·중·고를 모두 서울에서 나왔고, 1996년 해태(현 KIA) 입단 후에는 14년간 광주에서 살았던 장성호는 "벌써 입에서 조금씩 부산 사투리가 나온다"며 껄껄 웃었다.
◇"롯데에 단기전 노하우를 전수하겠다"
장성호는 작년 말 '깜짝 트레이드'를 겪었다. 롯데의 신인 투수 송창현(24)과 일대일로 맞교환됐다. 롯데 김시진 감독이 FA(자유계약선수) 홍성흔을 두산에 뺏기고 나서 타선 보강을 위해 먼저 트레이드를 제안했다. 장성호의 입장에선 아직 데뷔조차 하지 않은 대졸 신인과 일대일로 교환되는 게 자존심 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장성호는 트레이드 후 먼저 송창현의 페이스북에 격려 글을 남겼다. '한화 가서 잘해라. 우리가 만난 적은 없지만 같은 프로야구 선수이고 선배다. (중략) 항상 응원 하마, 화이팅 해라'라는 내용이었다.
장성호는 김시진 감독이 그를 데려온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몇 년 전까지 롯데 타선의 주축이던 '홍대갈(홍성흔·이대호·가르시아)' 트리오는 모두 롯데를 떠났다. 특히 팀의 분위기 메이커였던 홍성흔의 공백은 경기 내·외적으로 롯데에 타격을 주리라는 예상이 많다.
평소 '액션'이 크지 않은 편인 장성호는 "(홍)성흔이 형의 독보적인 '오버 액션'을 내가 똑같이 따라 할 순 없다"면서도 "내 나름대로 선수단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액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선수단을 잘 이끌기 위해 충암고 1년 선배인 조성환(37)과 꾸준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롯데에서 장성호는 조성환에 이어 나이 서열 2위이다.
장성호의 강점 중 하나는 큰 경기 경험이다. 그는 해태와 KIA에서 세 차례(1996· 1997·2009)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받았다. 반면 롯데는 1992년을 끝으로 20년간 우승을 못했다. 장성호는 "나는 단기전에서 좋은 기억이 많다"며 "분명히 팀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했다.
◇5년 만의 3할, 그리고 70타점 노린다
현재 국내 프로야구 통산 타격 기록은 대부분 양준혁(44·은퇴) SBS ESPN 해설위원이 보유하고 있다.〈그래픽 참조〉 장성호는 이를 위협할 가장 유력한 도전자로 꼽힌다. 장성호는 양준혁과 더불어 '왼손 3할 타자'의 대명사로 통했다. 2002년 한 차례 수위 타자(타율 0.343)를 차지했고, 1998년부터 2006년까지 9시즌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다. 팬들은 정교한 타격 기술을 갖춘 그를 '스나이퍼(저격수)' 혹은 '장스나'라고 불렀다.
하지만 장성호는 2008년 KIA에서 통산 열 번째 3할 타율(0.304)을 기록한 것을 끝으로 작년까지 4시즌 연속 2할대 타율에 머물렀다.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2009년 왼손바닥 수술을 받았고, 이듬해 한화로 트레이드되고 나선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았다. 2011년 말에는 왼쪽 어깨마저 다쳐 수술대에 올랐다.
4년 만에 정상적으로 전지훈련을 소화하고 있는 장성호는 "어디 아프지 않고 훈련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고 했다. KIA 시절 연습 벌레로 통했던 그는 "연습량과 강도는 예전의 60~70% 수준으로 줄였지만 오히려 몸 상태는 훨씬 좋다"고 했다.
올 시즌 개인 목표에 대해 장성호는 "3할 타율과 두자릿수 홈런, 70타점"이라고 밝혔다. 통산 안타 3위(2007개)를 기록 중인 그는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시즌 초반에 전준호 NC 코치의 통산 2위 기록(2018개)을 넘어설 전망이다. 장성호는 이를 넘어 양준혁의 통산 안타 1위 기록(2318개)까지 바라본다. 3년간 매년 100안타 이상을 치면 경신할 수 있다. 장성호는 "롯데에 와서 다시 자신감을 얻었다"며 "부산에서 꼭 양준혁 선배의 기록을 깨고 은퇴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