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국제미술경매시장 분석업체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지난 2011년 7월~2012년 6월 중 낙찰 총액 1위(현대미술 작가)를 차지한 것은 장-미셸 바스키아(Basquiat· 1960~1988)였다. 총 낙찰액은 7993만파운드(약 1340억원). 지난 14일(현지시각) 런던 필립스 경매에서도 바스키아의 드로잉 '무제'(1982)는 1520만달러(약 164억원)로 그날 최고가를 기록했다.
◇왜 바스키아 열풍인가
최근 몇 년 사이 '검은 피카소' 바스키아의 재평가가 뚜렷한 징후로 나타나고 있다. 아트프라이스는 지난해 '바스키아 신화(神話)'라는 부제가 붙은 보고서를 통해 "바스키아는 앤디 워홀과 맞먹는 20세기 미술의 신화적 인물이 됐다. 예술적 명성은 워홀과 비슷하나 작품 값은 워홀에 비해 싸다. 투자자들은 바스키아 작품을 '안전한 천국'이라 여기며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짧고 굵게' 살다 간 작가의 드라마틱한 삶은 작품 가격 상승의 요인. 미술평론가 유진상씨는 "백인 주류사회에서 주목받은 흑인, 28세에 요절한 천재라는 극적인 삶처럼 대중을 매혹할 만한 요소를 모두 갖춘 예술가는 매우 드물다"고 했다.
대형 화랑의 가격 조작설도 있다. 한 미술계 인사는 "뉴욕 가고시안 갤러리가 지난 7일부터 바스키아 개인전을 열고 있다. 2005년 브루클린 미술관 회고전 이후 뉴욕 개인전은 8년 만에 처음이다. 개인전을 앞두고 가고시안이 경매에 참여해 '장난'을 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내에서 만나는 바스키아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2관에서 열리는 '장-미셸 바스키아' 개인전은 이 작가의 작품 여럿을 오랜만에 국내서 만나는 기회. 캔버스에 오일스틱, 아크릴 물감으로 마구 휘갈겨 그린 듯한 바스키아 특유의 '낙서 그림' 18점이 나왔다. 팝아트·개념미술·신표현주의 등 바스키아 생전의 미국미술계를 지배한 사조들이 종합적으로 녹아 있는 작품들이다.
1982년작 '무제'는 바스키아의 삶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 검정 캔버스에 오일스틱으로 자신의 왼손을 그리고 척추 해부도, 해부학 용어를 잔뜩 휘갈긴 이 작품의 부제는 '손 해부학'. 7세 때 교통사고로 입원해 비장 제거 수술을 받았던 바스키아는 당시 어머니로부터 선물받은 해부학책이 이후 자신의 작품 세계에 큰 영감을 줬다고 술회한 바 있다. 손 옆에 적힌 'RPM(분당 회전수)'이란 단어는 작가가 화가인 동시에 DJ 활동에도 열심이었음을 의미한다. 3월 31일까지. (02) 735-8449
바스키아는…
고등학교(대안학교)를 중퇴했고, 70년대 후반 뉴욕 뒷골목에서 그래피티(graffiti·낙서) 작업으로 처음 미술계에 자신을 알렸다. 사인 대신 왕관을 그려넣은 그의 낙서 그림은 하위문화를 대접하기 시작한 80년대 초반 뉴욕 예술계의 입맛에 딱 맞았다.
1981년 뉴욕 갤러리아 아르테 에밀리오 마촐리라는 화랑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가진 그는 이후 4년간 경이로운 수직상승을 경험한다. 1982년 카셀 도큐멘타, 1983년엔 휘트니비엔날레에 참가했다. 두 이벤트 모두 최연소 참가 작가. 1984년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작품을 전시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후반부터 대중은 그의 그림에 흥미를 잃었고, 갤러리와 연인도 그를 떠났다. 괴로움을 잊으려 손댄 약물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어 28세에 요절했다. 친구 줄리언 슈나벨이 1996년 그의 생애를 담은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