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의 삶은 다사다난했다. 야구 천재로, 또 톱스타의 남편으로 주목받던 그는 부상으로 인한 선수 생활 마감과 불행했던 결혼 생활, 전처의 자살과 그로 인한 비난, 잇단 사업 실패 등 인생이 짧은 행복과 긴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하는 자책은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또 일어났다. 조성민이 지난 1월 6일 여자친구의 집 욕실에서 목을 매 숨진 것. 국립과학수사대는 부감 결과 사인을 자살이라고 밝혔다. 장례식장에는 하일성 KBS N 스포츠 야구해설위원이, 전 야구선수이자 야구해설가 양준혁·박노준 스포츠해설가, 두산 베어스 윤석민, 방송인 홍진경 등 천여 명이 찾아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의 유해는 1월 8일 오전 11시 성남 납골당에서 화장되어 오후 1시께 장지인 분당 스카이캐슬 추모공원으로 이동, 납골당에 안치됐다.
고 최진실 모, "이제 늙은이만 남았다"
조성민의 어머니는 아들의 유해를 화장하는 내내 "아까워서 어떻게 해. 불쌍해서 어떻게 해." 하며 울부짖었다. 환희와 준희는 장례식 내내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고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씨도 발인식에 참석했다. 그녀는 장례식장에서부터 납골당과 추모공원까지 유족과 함께 움직였다. 평소 그리 좋은 사이로 지낼 수는 없었지만 그녀에게도 사위의 죽음은 충격적이었다. 창백하게 납골당에 앉아 있었던 그녀는 "아무리 그래도 환희, 준희 아빠가 아니냐. 소식 듣고 기절했다"며 당시 받았던 충격을 되새겼다. 정옥숙 씨가 가장 걱정하는 건 아이들이다. 두 번의 큰 충격을 겪은 아이들이, 또 다시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겪는 것이 마음 아프다.
"이번 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터지니까 어른이나 애들이나 모두 제정신이 아니에요. 환희는 어제 장례식 다녀와서 막 울더라고요. '그동안 아빠한테 못해서 미안하다. 아빠 불쌍하다'면서. 그 모습이 어찌나 안 됐던지…."
비록 조 씨가 아닌 최 씨로 개명했지만, 조성민은 누가 뭐래도 아이들 아빠다. 아이들은 휴대폰을 통해 아빠와 자주 연락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에게 '뭐 갖고 싶냐'고 전화가 왔었어요. 시간이 없어서 못 만났는데, 당시 힘든 낌새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준희가 아빠와 연락을 자주했어요. 아무래도 딸이니까 살갑게 지냈죠. 문자도 자주 보내고. 준희가 크면서 아빠를 많이 닮아가."
정옥숙 씨는 기자의 "건강하라"는 말에 "이런 일이 계속 터져서 이제 우리 늙은이들만 남았다. 걱정이다"라고 푸념했다. 그리고 납골당에 놓인 조성민의 사진을 보면서 "뒤돌아보지 말고 가시게. 하늘나라에 가서도 환희, 준희 잘 보살펴줘."라고 기도하듯 말했다.
고 조성민 부, "아들에 관한 책 쓸 것"
삼우제에서 만난 유족은 여전히 조성민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직 아들 모습이 생생하다"면서 "말하면 뭐하나. 지금도 꿈만 같다. 믿어지지도 않고 실감도 안 난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부친이 척추 수술로 병원에 입원 중이라 그곳에서 아들의 죽음을 접했다. 조성민의 장례가 고대 안암병원에서 치러진 것도 그 때문이다. 아들을 먼저 앞세운 아버지는 장례식 내내 휠체어에 타고 있었다. 누구보다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아버지는 납골당에 넣을 사진으로 조성민이 요미우리에서 활동했던 시절, 아들의 전성기 시절 사진을 손수 챙겨왔다. 그 사진을 마치 얼굴 쓰다듬 듯 쓰다듬으면서 그는 꿈을 꾸는 듯 "요미우리 시절, 경기가 있으면 일본까지 가서 경기를 보곤 했다. 아직도 그때 일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더 묻는 기자에게 "최고의 아들이었다. 아들의 이야기는 모두 책으로 쓸 것"이라며 자리를 떠났다. 조성민의 작은아버지는 "엄청 착한 놈이, 나쁜 놈이 되고 나서 많이 힘들어했다"고 털어놓았다.
"장난도 잘 치고 농담도 잘하니까 남들은 아픈 걸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장례식을 같이 치른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참 좋은 놈이었는데, 이렇게 됐다'고 안타까워하더라고요. '네가 좀 챙기지 그랬느냐'고 하니까 '전혀 감을 못 잡았다'고 해요. 아무래도 순간적으로 벌인 일 같아요. 의도적으로 한 일 같지는 않아요."
조성민의 누나 조성미 씨는 "죽기 일주일 전에도 같이 밥을 먹고 집에서 같이 지내기도 했다"며 "식구들에게 속내를 털어놓지 않고 모든 걸 혼자 짊어지려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요미우리 시절부터 함께 해온 조성민의 전 에이전트 대표인 손덕기 씨는 장례식 내내 유족과 함께하면서 매니저 역할을 자처했다. 그에게도 조성민의 죽음은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 그는 항간에 떠도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조성민을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추측에 대해 "경제적인 어려움은 아니었다"고 일축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 조성민과 연락했다"면서 "1월 1일에는 돈 많이 벌자는 전화도 왔다"며 믿어지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함께 구상하고 있는 사업이 많았어요. 유소년 축구나 사회인 축구에 애정이 많아 지자체와 진행하기로 이야기가 잘되고 있었거든요. 코치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즐거워했고요. 쉽게 떠날 사람이 아닌데, 이해가 가지 않아요."
후회는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손 대표 역시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내가 잘못했나 싶기도 하다"면서 자책했다.
고 조성민 “모자란 부모를 용서하지 말아라”
그런가 하면 1월 13일에는 조성민의 자필 유서가 뒤늦게 발견됐다. 유서는 고인의 짐을 정리하던 중 배낭 속에서 발견됐다. 가로 9㎝, 세로 15㎝ 크기의 수첩에 3페이지에 걸쳐 자필로 작성된 글에는 '유서'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배낭 속에서 생활용품을 비롯해 통장과 도장, 다이어리도 발견됐다.
"우선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못난 자식이 그동안 가슴에 못을 박아드렸는데, 이렇게 또다시 지워질 수 없는 상처를 드리고 떠나가게 된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이젠 정말 사람답게 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도 가져갑니다. 이 못난 아들, 세상을 더는 살아갈 자신도 용기도 없어 이만 삶을 놓으려고 합니다. 행복한 날들, 가슴 뿌듯했던 날들도 많았지만 더 이상은 버티기가 힘이 드네요. 사랑하는 부모님, 그리고 우리 OO이(당시 함께 있던 여자친구). 제가 이렇게 가게 된 것에 대한 상처는 지우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딸 환희, 준희야. 너희에게 더할 나위 없는 상처를 아빠마저 주고 가는구나. 불쌍한 우리 애기들…. 이 모자란 부모를 용서하지 말아라.
법적 분쟁을 (피하기) 위해 저의 재산은 누나 조성미에게 전부 남깁니다."
유서를 발견한 손덕기 씨는 "고인의 글씨가 맞다"면서 "자살을 시도한 당일(1월 6일)에 쓴 것 같지 않았다. 글씨가 상당히 안정돼 있었다. 그동안의 생활이나 자기 처지를 비관하고 죽음을 예고한 것 같은 유서였다"고 말했다. 유산 문제까지 생각한 것으로 보아 꽤 오래전부터 죽음을 준비했던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