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1시 서울 관악구 신원동 주택가. 승용차 1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고 가파른 이면도로에서 20여명이 일렬로 삽과 빗자루로 눈을 쓸고 있었다. 이들은 전날 오후부터 내린 눈을 치우기 위해 나온 신원동 동네 주민들. 이날 오전 7시 30분부터 제설작업을 한 신경식(63)씨는 "비탈길이 많은 동네라 눈을 제때 치우지 않으면 큰 사고가 난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건우(27)씨는 "저번에 눈이 왔을 땐 아무도 눈을 치우지 않아 1월 중순까지 모두 빙판길이었다"며 "하지만 오늘은 여기저기서 눈을 치우는 분들이 많아 나도 동참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에 16.5㎝의 눈이 쌓이는 등 중부지방에는 3일 오후부터 4일 오전까지 올겨울 들어 가장 많은 눈이 쏟아졌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에서 이날 내린 눈은 2월 적설량으로는 12년 만에 가장 많았다.

하지만 이날 서울·인천·경기 등에선 눈이 쌓이기가 무섭게 쓸어버리는 시민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지난달 폭설과 한파에도 내 집 앞 눈을 치우지 않아 낙상(落傷) 사고가 급증했다는 지적 이후 전국적으로 퍼진 '눈 치우기 운동'이다. 전국 대부분 지방자치단체는 '내 집·점포 앞 눈 치우기'를 조례로 의무화했지만, 최근까지 처벌 규정이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3~4일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눈 치우기에 동참한 인원은 7만8846명(4일 오후 2시 기준)으로 파악됐다. 일반 시민은 5만6226명, 공무원은 2만2620명이었다. 지난달 11~12일 3만4452명(일반 시민 2만3553명, 공무원 1만899명)의 2배가 넘는 인원이다.

유난히 눈이 많은 겨울이다. 지난달 초 전국에 폭설이 내렸을 때는 치우지 않은 눈이 얼어붙어 낙상 사고가 급증했다. 시민들은 ‘내 집 앞 눈은 내가 치워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3~4일 내린 중부 지역 폭설엔 자발적으로 눈을 치우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서울 노원구 월계2동 구민자율제설봉사단이 4일 오전 월계고 주변 눈을 치우는 모습(위). 넥타이를 맨 시민도 삽을 들었고(왼쪽 아래), 관악구 신원동 자율방재단의 오창학씨는 자신의 굴착기로 제설에 나섰다(오른쪽 아래).

오후 12시 30분쯤 성동구 금호2·3가동 주민센터 인근 이면도로는 비탈길임에도 주민들이 편안하게 오갔다. 오전 중에 제설작업이 완료됐기 때문. 주민·공무원 85명이 오전 6시부터 6시간가량 눈을 치웠다. 이철우 금호2·3가 동장은 "동네 도로가 비좁고 경사가 심해 제설작업이 많이 힘든데, 이번 폭설에는 주민들이 너도나도 눈 치우기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오후 1시쯤 송파구 풍납1동 전통시장 입구에서는 주민 15명이 넉가래로 눈을 치웠다. 일부 눈은 녹인 뒤 하수도와 연결된 맨홀에 흘려 보냈다. 시장에서 도배지를 파는 상인 고선옥(52)씨는 "일전에는 눈이 쌓여도 다들 보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오늘은 주민들이 힘을 합쳐 눈을 치우니까 정말 좋다"며 사람들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했다. 오후 2시 서울 강동구 상일동 상일여중고교 앞 주택가는 폭 5m 도로 양편으로 30~50㎝의 눈이 쌓여 있었지만, 길 가운데는 눈이 안 온 것처럼 말끔했다. 주민 12명이 오전 10시부터 제설작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눈 치우기 운동은 전국에서 벌어졌다. 지난 1월 1일 폭설 당시 제설작업이 전혀 안 돼 교통대란을 빚은 경기 수원시는 이번 폭설 때는 제대로 대비해 불편을 줄였다. 수원시는 폭설 예보에 따라 3일 낮 12시부터 제설 담당 인력과 장비를 비상 대기시켰고, 눈이 내리기 시작한 직후인 3일 오후 9시 40분부터 인력 395명, 장비 162대를 투입해 밤샘 제설을 했다. 인천시도 이날 인력 4000여명, 제설 차량 578대, 제설제 2283t을 사용해 출근 시간 전까지 제설작업을 끝내도록 했다. 20㎝의 폭설이 내린 강원 홍천군 내면 창촌2리에서는 이날 오전 8시부터 주민 30여명이 모여 함께 제설작업을 펼쳤다. 오후 2시가 되자 동네가 말끔해졌다. 김동각 창촌2리 이장은 "눈이 오면 주민들이 함께 제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이날 트위터 등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상에서도 '눈 치우기 운동' 독려가 활발했다. 트위터 아이디 @nur****는 "오늘 눈 치우기 딱 좋습니다. 자, 모두 삽이나 빗자루를 들고 집 앞으로 고고!!"라는 글과 눈을 치우는 '인증샷'(일종의 증명사진)을 올렸고, 아이디 @jej****는 "내가 넘어져도 내 집 앞 눈 녹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국가에서 세금으로 치우길 바라시렵니까? 우리 동네는 우리가 눈 치우기 합시다"라는 글을 올렸다. 아이디 hal****는 "시민의식이 달라졌어요. 골목이 다 뚫렸어요"라는 글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