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오전 2시 신논현역 근처 뒷골목에 호스트바 광고 전단이 어지럽게 깔려 있다.

지난달 21일 오전 4시 서울 강남구 선릉역 근처의 5층짜리 건물. 1층 커피숍처럼 꾸며진 공간에 20~40대 여성 10여명이 테이블 여러 개에 나눠 앉아 차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다.

30대 남성이 건물 내부 엘리베이터에서 젊은 여성 3명과 내리더니 이들을 업소 현관문 밖까지 배웅하고 돌아왔다. 이 남성은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던 여성 2명을 4층으로 안내했다. 이 업소는 노래방 간판을 달았지만 건물 전체가 남자 접대부가 나오는 속칭 '호스트바'다. 1층은 '빈방'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대기실이었다.

이 업소는 24시간 운영될 정도로 손님이 많으며 20대 남자 접대부 200~300명이 교대 근무하고 있다. 새벽 시간에는 '근무'를 마친 룸살롱 마담이나 술집 종업원이 주로 찾고 낮 시간엔 주부, 저녁 시간엔 회사원 등이 주요 고객이라고 한다.

여성전용 노래방이나 여성전용 카페 등의 간판을 내세운 호스트바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 이 업소들은 당국 허가를 받지 않았거나,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노래방이나 일반음식점으로 허가를 받는 등 대부분 불법 영업을 하고 있다.

지난 22일 새벽 신논현역 근처 뒷골목엔 호스트바 광고 전단지가 길바닥에 어지럽게 깔려 있었다. '선수 150명 대기' '최고의 남성 100명 무한 초이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룸살롱 등 남성을 호객하는 광고지보다 더 많았다.

전단지를 돌리던 한 30대 남성은 "술집 여종업원이 가장 많이 몰려 사는 곳 아니냐. '퇴근시간'에 맞춰 판촉활동을 나왔다"면서 "과거에 비해 기업체 사장이나 주부, 회사원 손님이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호빠'의 최대 고객은 술집 종업원"이라고 했다.

근처 24시간 '미용실촌'에도 진풍경이 벌어졌다. 야심한 시각인데도 머리를 매만지는 남자와 여자 손님이 각각 절반쯤 됐다. 저녁 시간대 출근을 앞둔 여성접대부로 붐볐던 이 일대 미용실에 젊은 남성접대부들이 새 고객층으로 떠오른 것이다.

1990년대 서울 강남과 부산 일부 지역에서 은밀하게 영업해왔던 호스트바는 지금은 서울 주요 유흥가는 물론 경기 성남과 고양 등 수도권 신도시와 대구 울산 대전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성업 중이다.

호스트바 유흥문화가 확산되는 배경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여성이 증가한 게 주요 요인이지만, 업소들이 가격을 대폭 내린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룸살롱 황제' 이경백씨가 가격 파괴 전략으로 중저가 룸살롱 시장을 평정한 것처럼 호스트바들도 앞다퉈 술값을 내리면서 여성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1인당 15만~20만원에 2, 3시간 놀 수 있는 호스트바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저가형 호스트바나 여성전용 노래방의 경우 남자 접대부에게 주는 팁은 시간당 3만원 선이다. 물론 '2차'를 가는 경우엔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대부분 업소는 영업시간 중 성매매를 금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취업에 실패하거나 쉽게 돈을 벌어 보려는 젊은 남성이 많아진 것도 호스트바 증가의 한 요인이다. 여성전용 노래방에서 근무했던 한 대학생은 "좋은 손님 만나 하루에 100만원을 번 적이 있다"면서 "이 나이에 일당 20만~30만원을 주는 직장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일부 호스트바 업주들은 대학교에 찾아가 꽃미남 학생을 상대로 '스카우트'를 시도하고 있다. 과거 룸살롱 마담들이 미모의 여종업원을 물색하러 여대 앞에 찾아간 것과 같은 식이다.

서울 강남과 신촌, 신천 등 주요 유흥가엔 남자 종업원의 사진들을 업소 밖에 걸어놓은 여성전용 카페나 바(Bar)가 속속 생기고 있고, 일부 남성들은 한류(韓流)를 타고 중국과 일본에 원정 취업을 나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술집 여종업원 박모(27)씨는 "보도방에 연락하면 남자 접대부를 어디든 불러준다"면서 "친구들 중에 식당이나 포장마차에서도 남자를 불러 놀았고, 원하면 집으로도 '선수'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회사원 정모씨는 "돈 있겠다, 시간 있겠다, 남자만 룸살롱 가서 놀라는 법 있느냐"고도 했다.

그러나 현재 영업 중인 호스트바의 대부분은 불법이다. 탈세를 위해 노래방이나 일반 음식점으로 허가를 받았을 뿐 아니라 단속을 의식한 무허가 업소도 상당수다.

경찰과 검찰이 수년 전부터 룸살롱에 대해 대대적으로 단속에 나섰으면서도 호스트바에 대한 적발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성 접대부는 정기적으로 보건소 검사를 받지만 남성 접대부는 보건증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호스트바가 성병의 사각지대로 전락하고 있고, 그동안 지탄을 받았던 남성들의 향락 문화가 여성에게 그대로 전파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자정(自淨)기능 부족을 의미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사회 저변에 청년 실업 문제가 깔려있고 욕구라는 게 남자에게만 있는 게 아닌 데다 단속 의지까지 부족하다 보니 호스트바와 같은 불법 업소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여성을 피해자로 전제한 기존 성폭력 예방교육 등 성교육과 인권교육 체계를 전반적으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