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5시 30분쯤 울산 북구 매곡동에서 여성 대리운전 기사 A(49)씨가 만취한 손님 이모(54)씨의 자가용 운전대를 대신 잡았다. A씨가 운전을 시작하자마자 조수석에 앉은 이씨가 가족관계와 나이 등을 캐묻더니 급기야 "뽀뽀 한번 해도 되느냐"며 A씨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씨는 거부하던 A씨의 얼굴을 밀치며 때렸고, A씨가 차를 세우고 내리자 음주 상태로 직접 차를 운전해 갔다.

경찰은 14일 술 취해 여성 대리운전 기사를 성희롱하고 폭행한 혐의로 이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조사 결과 당시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운전면허 취소 수치인 0.131%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불황 속에서 생계형 여성 대리운전 기사들이 늘면서, 이들을 상대로 술 취한 고객들의 성추행이나 성희롱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대리운전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여성 기사들이 손님들의 성추행·성희롱에 관한 고충을 하소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회원 수 3만4000여명의 대리운전 기사 인터넷 카페에는 '차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조수석에 앉아있던 40대 손님이 바지에 속옷까지 벗길래 경찰서 앞까지 차를 몰고 간 뒤 내려버렸다' '운전 도중 손님이 내 허벅지에 손을 갖다댔다. 손을 밀어냈더니 왜 이리 손이 차냐며 계속 추근댔다' 등의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문제는 여성 대리 기사들이 이 같은 피해 사례를 적극적으로 신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0년째 대리운전을 하고 있는 손모(여·46)씨는 "몇 만원 벌러 나왔는데 경찰서 가서 술 취한 손님과 옥신각신해봐야 우리만 손해"라며 "눈 딱 감고 그 시간에 한 푼이라도 더 버는 것이 낫다"고 했다. 성동경찰서 정환웅 형사과장은 "여성 대리 기사들은 신고 자체를 수치로 느껴 신고를 꺼리는 경향도 강하다"고 말했다.

가해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이 가볍다는 점도 문제다. 작년 8월 제주도에서는 여성 대리운전 기사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운전하게 한 뒤 성폭행하려 한 회사원 A(30)씨에게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