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나(34)의 할리우드 진출작인 판타지 블록버스터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10일 국내 개봉, 12일까지 3일 동안 22만3708명을 모으며 순항 중이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윤회사상에 입각, ‘모든 만남에는 이유가 있다’는 주제의식에 따라 172분이나 되는 긴 러닝타임 동안 1849년 태평양, 1931년 벨기에와 영국, 1973년 미국, 2012년 영국, 2144년 한국(네오서울), 2321년 하와이 등 6개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스토리가 미스터리, 스릴러, 멜로, 코미디, SF, 액션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된다.
‘한 번에 6가지 영화를 즐겼다’, ‘‘매트릭스’나 ‘인셉션’을 넘어서는 지적 유희의 환희를 느꼈다’ 등 호평과 ‘너무 길어 지루해 졸았다’, ‘뭐가 뭔지 헷갈렸다’는 악평이 엇갈린다.
영화에 만족스러워한 사람도, 불만인 사람도 공통적으로 찬탄하는 것이 있다. 배우들의 다양한 캐릭터 연기다. 배우들은 시공간은 물론 성별까지 뛰어넘어 큰 역할부터 스쳐 지나가는 작은 역할까지 가리지 않고 열연한다. 톰 행크스(57)는 1849년 에피소드에 ‘어윙’(짐 스터게스)을 해치려는 비열한 의사 ‘구스’, 1931년에는 젊은 작곡가 ‘프로비셔’(벤 위쇼)가 묵는 호텔의 ‘탐욕스런 매니저’, 1973년에는 핵발전소의 음모를 파헤치는 여기자 ‘루이자 레이’(할리 베리)를 돕는 연구원 ‘아이작’, 2012년에는 출판업자 ‘캐빈 디시’(짐 브로드벤트)를 통해 책을 출판한 ‘3류 소설가’, 2144년에는 복제인간 ‘손미’(배두나)가 몰래 보는 영화 속 주인공 ‘캐빈 디시’, 2321년에는 멸망한 지구에 살아남은 극소수 인간 중 하나인 ‘젊은 자크리’와 우주의 행성으로 이주한 ‘늙은 자크리’ 등을 맡았다.
할리 베리(47)는 1849년에는 ‘흑인 노예’, 1931년에는 늙은 작곡가 ‘비비안 에어스’(짐 브로드벤트)의 ‘젊은 아내’, 1973년에는 ‘레이’, 2012년에는 캐빈 디시와 3류 소설가가 참석한 파티에 참석한 ‘여인’, 2144년에는 ‘순혈인 남자 의사’, 2321년에는 자크리와 모험을 펼치는 문명인인 ‘메로님’과 자크리와 행성으로 이주한 ‘늙은 메로님’ 등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배두나는 1849년에는 어윙의 미국인 아내, 1973년에는 레이가 숨어든 공장의 ‘멕시칸 여인’, 2144년에는 손미 등으로 분했다.
휴고 위빙(53)은 1849년에는 어윙의 장인 ‘미스터 무어’, 1931년에는 비비안의 집을 방문한 ‘독일인 지휘자’, 1973년에는 레이의 목숨을 노리는 ‘킬러’, 2012년에는 캐빈디시가 갇힌 요양원의 힘센 여자 간호사 ‘녹스’, 2144년에는 손미를 탄압하는 ‘순혈인간 지도자’, 2321년에는 자크리가 두려워하는 악마 ‘올드 조지’ 등으로 나온다.
할리우드 SF 블록버스터 ‘매트릭스’(1999)의 연출자인 라나(48)·앤디(46) 워쇼스키 남매와 스릴러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2006)를 연출한 톰 티크베어(48) 등 이 영화의 공동연출자들은 그저 관객들에게 재미만 주기 위해 배우들에게 1인 다역을 주문한 것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내한 당시 라나 감독은 “윤회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배우들을 각 에피소드에 다른 캐릭터로 출연시켰다”면서 “만약 다른 배우들이 했다면 우리는 각 삶이 연결됐다는 것을 보여주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특히 “영화에서 배우들은 외계인도 되고, 뱀파이어도 된다. 하지만 한 민족이 다른 민족으로 분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었다. 한국인 만이 한국인을, 일본인 만이 일본인을, 유대인 만이 유대인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은 편견이다. 그것을 깨뜨리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배우들도 대만족이다.
배두나는 “배우는 늘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바람을 한 방에 해결해준다. 내가 서양인을 언제 해볼 수 있겠는가”고 털어놓았다. 특히 “손미와 멕시칸 여인은 다른 톤의 연기다. 낯선 곳에 홀로 가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손미를 연기하면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멕시칸 여인을 연기하면서 풀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한 작품에서 인종, 성별, 시대를 뛰어넘어 다양한 캐릭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된 것은 할리우드 대스타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래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더라”면서 “서로의 특수분장을 보며 놀라워하기도 하고, 연기하면서 다들 즐거워했다”고 돌아봤다. “이런 발상의 전환은 워쇼스키 감독이 아니면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들과 함께 일했다는 것은 영광”이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쉽게 알아차리는 캐릭터도 있지만 인지하지 못하는 캐릭터도 많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다양한 캐릭터를 배우별 하이라이트식으로 보여준다. 이름하여 ‘배우들의 분장쇼’다. 영화에 만족한 관객도, 불만스러운 관객도 다들 흥미로워하는 시간이다.
안타까운 것은 사전 정보가 없었는지 일부 관객들이 이를 보지 않고 영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나가버린다는 점이다. 영화가 끝나고 ‘분장쇼가 이어집니다’라는 자막이 나오기는 하지만, 엔드크레디트가 먼저 나온 다음 분장쇼가 시작되는 탓이다. 조금만 더 앉아 기다리면 덩치 큰 여자가 된 위빙이었다는 것도, 주근깨 투성이 미국 여인이 배두나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특히, 코가 높아지고 눈은 작아진 2144년 반군 장교 ‘장혜주’가 할리우드 신성 스터게스(35)라는데 충격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