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작지만 개성 있는 나만의 집을 짓고자 하는 수요도 늘고 있고, 건축 관련 서적의 출간도 눈에 띄게 늘었다. 열풍 뒤엔 그간 조용하게 우리 건축 문화를 발전시켜온 건축가들의 땀방울이 있다. 본지는 우리나라 건축 거장들의 철학과 이 땅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명해보는 '한국 대표 건축가가 직접 뽑은 나의 대표작' 시리즈를 시작한다. 첫 회는 김인철(66) 아르키움 대표이다.
건축가 김인철이 꼽은 자신의 대표작은 경기도 파주출판도시 '웅진씽크빅' 사옥이다. 김인철의 작품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건물은 다소 생경한 '김인철의 건축물'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어반하이브'(2008)는 물론, '김옥길 기념관'(1998) '오르는 집'(2008) '호수로 가는 집'(2008) '질모서리'(2011) 등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던 그의 작품들과는 이미지의 궤를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도 치듯 유연하게 외벽을 감싼 유리 건물이 묵직함보다는 투명하고 가벼운 느낌을 준다.
최근 만난 건축가는 "웅진씽크빅은 내용면에서 나의 건축관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라고 했다. "내·외부로 개방된 공간과 형태가 나의 건축철학인 '없음'을 잘 드러내준다." 2007년 '김수근 문화상' '대한민국 건축문화대상 대상' '한국건축가협회상' 등 3대 건축상을 전부 휩쓰는 기록을 남긴 건물이기도 하다.
건물은 한마디로 밝고 투명하다. 빛을 한 몸에 머금은 유리와 유글라스(불투명한 유리)가 건물 구석구석에 빛을 던져준다. 출판도시 건축물 규제법에 따라 애당초 '바위' 유형으로 디자인돼야 했던 이 건물을 두고 건축가는 어떤 '돌'로 만들 것인가 고민했다고 한다. "땅이 가장 중요했어요. 멀게는 북한강이, 가깝게는 작은 하천이 휘돌고 있었죠. 갈대도 무성했고요." 그래서 생각한 게 "바위는 바위이되 결코 무겁지 않은 바위, 마치 공기처럼 가볍고 투명한 '수정'이었다"고 한다. 특유의 질박함 때문에 노출 콘크리트를 선호해온 그가 이 작품에서 소재를 달리한 이유다.
내부 공간은 모호함을 메타포로 열려있다. 건축가는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건물의 천장 높이와 바닥 레벨을 층별로 각각 조금씩 다르게 조정했다. 그래서 이 건물에 있으면 '내가 지금 몇 층에 있는 건가' 약간의 혼란을 느끼게 된다. "1층, 2층, 3층…. 층을 기계적으로 구획하면 사람들은 공간을 한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 경계를 조금만 무너뜨리면 건물 전체가 내 것처럼 느껴진다"는 게 건축가의 설명이다. 북한강 너머 석양이 지는 풍광은 이 건물이 선사하는 작은 호사로, 부드러운 둔덕으로 바닥을 마감해 '올라오고 싶은 공간'을 완성했다.
김인철은 "다들 건물을 얘기할 때 형태를 먼저 얘기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공간이다. 형태는 공간의 외피를 두르는 역할에 머물 뿐"이라고 했다. "내 건축의 '없음'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죠. 채우고 드러내고 말을 거는 건축이 아니라 자연 속에 점을 찍거나(호수로 가는 집)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축(오르는 집), 복잡한 도심 풍광마저 단순하게 걸러주는 창(어반하이브)으로서의 건축 말입니다. 공간의 공(空) 역시 '빌 공' 아닙니까." 조만간 네팔의 라디오 방송국, 캄보디아의 복합문화공간 완공을 앞둔 건축가는 침묵하는 건물을 통해 계속 대화해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