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5일 스페인의 동북부 카탈루냐에서는 이 지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스페인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카탈루냐통합당(CIU)과 마리아노 라호이 현 총리가 이끄는 반대파 국민당(PP)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CIU의 당수 아르투르 마스 카탈루냐 주지사는 “2014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겠다”라고 주장하며 지지층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다소 맥빠진듯한 모습을 보였다. CIU는 전체 의석(135석)에서 목표로 했던 절대 과반수(68석)에 한참 못 미치는 자리(50석)를 차지했다. 그렇다고 분리 독립 열기가 가라앉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CIU의 과반 확보실패는 주지사의 긴축정책에 대한 반기였을 뿐, 분리독립을 지지하는 나머지 정당들이 의석을 나눠 가졌다.
현지 언론들은 "각 당의 결집은 현재로선 불투명한 상태"라면서도 "분리독립 움직임이 여전히 득세하는 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 유럽 전역에 40여개 지역 독립 꿈꿔
스페인 카탈루냐의 지방 선거 열기는 유럽연합(EU) 역내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를 계기로 각국 지방의 독립운동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가까이는 스페인 안의 또 다른 지방 바스크에서부터 영국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벨기에 플랑드르와 프랑스 브르타뉴, 오스트리아 티롤, 독일 남부와 이탈리아 북부지역까지 오래전부터 독립을 꿈꾸던 유럽 지방 주도가 카탈루냐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독립을 원하는 지역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지역 독립주의연대 유럽자유동맹(EFA)에 따르면 이 협회에는 현재 40개 이상의 민족주의파가 모여 있다.
◆ 경제위기가 주범, "나부터 살자"
전문가들은 최근 유럽에 분리 독립주의 운동 바람이 가시화되고 있는 이유로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경제 위기를 꼽았다. 20년 전 ‘하나의 유럽’을 표방하며 유럽연합(EU)이란 우산 아래로 모인 유럽 각국은 이제 필요에 따라 동맹 관계를 끊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들을 하게 됐다. 실제 일부 지역은 이 기회를 틈타 국가의 틀에서도 벗어나려 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경기 후퇴에 대한 압박과 취약한 공공 재정, 정치적 불만으로 유럽 지역에 분리주의와 지방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분석했다. 존 버튼 전(前) 아일랜드 총리도 아이리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은 현재 경제 위기를 마주하고 있고 이 위기로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던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독립을 요구하는 지역 경제력이 자국 전체 경제 상황보다 낫다는 점도 이들을 자극하고 있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를 100으로 환산했을때 오스트리아 티롤의 GDP지수는 139.2, 스페인 카탈루냐의 GDP지수는 117.9로 국가 경제력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유로 회의론·유로 혐오자…英 EU 탈퇴론도
분리 움직임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요즘 영국에서는 유로 회의론(Eurosceptic), 혹은 유로혐오자(Europhobic)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현지 설문 조사에 따르면 EU를 지지하는 사람은 전체의 23%에 불과했다. 11월 초 옵저버지(紙)의 조사에서도 영국인의 과반이 넘는 56%가 영국의 EU 탈퇴를 원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상태에서 국민 투표가 이뤄진다면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이른바 브릭시트(Britain, exit의 합성어로 영국의 EU 탈퇴)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다.
지난달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브릭시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당시 "영국이 EU의 일부로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영국의 뜻을 밝히는 일에 겁을 낼 필요는 없다"고 말해 국민투표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기업과 정치권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아 브릭시트는 아직 논란으로만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영국이 단일화된 유럽 시장의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5억명으로 구성된 하나의 경제권이 영국 기업들에는 중요한 의미”라며 “브릭시트에 반대하는 기업인들의 목소리가 만만치않다”고 전했다. 실제로 입소스 모리(MORI)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3%는 브릭시트가 현실화하면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답했다.
영국의 차기 정치 주자로 꼽히는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도 영국이 유럽 역내에 남아야 한다며 “EU 단일 시장에 남아 거대한 자유 무역을 누려야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브릭시트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적지만 주도권을 쥐려는 시도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캐머런 총리를 비롯해 유로 회의론자들은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며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로부터 권력 일부를 되찾아오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