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에서 서늘하고 독기 어린 눈빛을 쏘아대던 배우 재희는 알고 보니 웃음이 많고 무언가를 숨기는 것에도 서툰 순수한 남자였다. 그리고 돌이 지난 아들 이야기에 절로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팔불출 아빠이기도 했다.
지난 23일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메이퀸’(극본 손영목, 연출 백호민)에서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는 악역 변신에 성공한 재희는 온전히 일상으로 돌아온 모습이었다. 약 4개월이란 시간동안 어둡고 우울한 박창희로 안방극장을 찾은 그는 실제로는 어떤 성격이냐는 질문에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은 원래 밝은 사람이라고 답했다.
밝고 호탕하게 웃던 재희는 그동안 전작 KBS 2TV 드라마 ‘쾌걸춘향’ 등에서 선보인 역할과는 달리 ‘메이퀸’에서 차갑고 어두운 인물로의 연기변신을 하게 된 계기를 묻자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변해 “다시 공부할 수 있어 좋았다”라고 답했다.
“사실 그동안 밝은 역할을 선호해서 이런 역을 피해왔었기 때문에 처음 창희 역할을 제의받았을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영화에서는 디테일한 부분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어두운 역할도 선뜻 선택했지만 드라마는 심의도 신경써야하고 아무래도 한계가 있잖아요. 그런데 또 어떻게 생각하니 내가 다시 공부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선택했어요. 결과적으로 정말 많이 공부할 수 있었고요.”
이처럼 어렵게 선택한 작품인데다 군 제대 후 처음으로 하게 된 지상파 드라마라 재희에게는 더욱 뜻 깊은 작품인 ‘메이퀸’은 견고한 성과도 같던 KBS 2TV '개그콘서트’를 누르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메이퀸’은 막장 드라마 논란에 휩싸이며 혹평을 받기도 했다.
“막장드라마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 네티즌 말은 신경 안 써요. 100명의 사람 중 90명은 좋게 생각해도 10명이 나쁘다고 말하면 나쁜 게 되는 건데, 그건 개인의 취향이지 모두의 취향은 아니잖아요. 저는 사람들이 말하곤 하는 막장을 진짜 막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른바 막장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그냥 사람들의 구미가 당기는 신선한 소재라고 생각해요.”
‘메이퀸’은 막장 논란 뿐 아니라 너무나 빠른 전개의 결말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평도 받았다. 이에 대해서는 재희도 아쉽다는 반응이었다.
“헐레벌떡 결말에 대해서는 저 포함 다른 배우들도 아쉬워하고 있어요. 굵직한 이야기들이 2회 만에 다 풀어져서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꼭 나쁜 결말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아요.”
여러 시끄러운 일이 있긴 했어도 ‘메이퀸’이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인기리에 종영한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연말 시상식에서 좋은 소식을 기대할 법도 했지만 그는 상에는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상 욕심은 없어요. 이유를 굳이 얘기하자면 정말 가지고 싶은 상을 이미 받아 봐서 그런 것 같아요. 신인 때 청룡영화제 신인상을 받고 나서는 상에 대한 욕심이 없어진 것 같아요. 대신 드라마에 주는 상이라면 기꺼이 환영입니다. 배우보다 고생하는 사람은 스태프인데 작품에 상을 주시면 스태프들이 기뻐할 수 있으니 그건 좀 받고 싶네요.”
‘메이퀸’을 통해 군 전역 후 대중 앞에 다시금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재희는 내내 드라마에 대한 많은 애정을 표현했다. 그런데 ‘메이퀸’이 자신에게 큰 의미가 됐다고 말하는 재희가 언급한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은 의외로 창희가 복수를 성공하는 장면이나 어려운 내면 연기를 요하는 장면이 아닌 키스신이었다.
“빗 속 키스신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대본에 ‘격정적으로’라고 쓰여 있더라구요(웃음). 그 때 구경하던 사람들이 200명 가량 계셨는데 어쩜 다들 말 한마디 없이 열심히 보셨어요. 그 때 NG도 없이 키스신 촬영이 다 끝났는데 그러고 나니 다들 ‘수고했다’고 그러셨어요. 제 생각엔 보통 한국 드라마 키스신은 초등학생들 뽀뽀 같아요. 그래서 이번 드라마를 찍을 때 키스신에 대한 많은 상의 후에 촬영했죠(웃음).”
‘메이퀸’이 재희에게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드라마가 한창 방송되던 중 그가 유부남이라는 것과 돌이 지난 아들이 있다는 사실이 보도돼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해프닝이 있었던 것. 어쩌면 입에 올리기 껄끄러울 수도 있는 이 일에 재희는 오히려 당황한 기색 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기사가 나가고 나서 축하를 많이 받았어요. 드라마 끝나고 발표를 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발표가 돼서 좀 안타까운 마음은 들어요. 그리고 기사에 나온 것처럼 절대 숨긴 것은 아니에요. 결혼식 올리고 혼인신고도 하고 편하게 데이트도 했는데 그냥 그동안 제가 기삿리가 안돼서 그랬던 거라고 생각해요. 단지 제가 공중파에 다시 출연하고 또 그 드라마가 반응이 좋고 조금이라도 이슈가 될 만한 사항이 되다 보니 그렇게 보도가 나간 것 같아요.”
재희는 가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피했다. 그는 가족에 대한 함구는 오랜 시간 연예인 생활을 한 자신과는 달리 부인과 아들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익숙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예인인 저야 이미 신경이 무뎌졌지만 그렇지 않은 직업을 가진 아내는 그렇지 않잖아요. 제 아내는 작은 것들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기사가 나간 후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할까 걱정도 많이 했고요. 아내한테는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했어요. 좀 앞당겨진 것뿐이라고요.”
아내에 대한 얘기가 진행되자 재희는 얼굴에 웃음을 띈 채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남자가 됐다. 재희는 그의 부드러운 인상만큼 아내에게도 배려가 앞서는 부드러운 남편이었다.
“기자회견 하고도 결혼 할 수 있죠. 하지만 그건 공인인 저의 생각이고 결혼의 방법은 남자가 여자에게 맞추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배우자가 원하는 결혼을 하고 싶었어요.”
한창 드라마 속에서 러브라인이 진행되던 상황에서 갑작스레 생긴 해프닝에 혹여나 현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냐고 조심히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오히려 너무 좋았다”는 것이었다.
“현장에서도 다들 축하해주셨어요. 함께 출연한 김재원과는 원래 친한 사이었는데 기사가 나가고 ‘홀가분하겠네. 왜 이제 알리냐?’ 이러더라구요. 사실 저는 홀가분하다기보단 너무나 당연한 거라서 아무 느낌도 없었지만요.”
재희는 이번 일을 통해 ‘알부남’이라는 신조어의 효시가 됐다. ‘알부남’은 ‘알고보니 유부남’의 줄인 말이다. 재희에게 ‘알부남’ 신조어를 만들게 된 소감을 묻자 “뭘 그런 걸”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 그는 결혼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나니까 훨씬 좋아요. 아들 사진 볼 때마다 너무 행복하고요. 제 아들은 제 외모의 장점만 닮아서 정말 잘 생겼어요. 뭐 보든 부모 마음이 다 똑같겠지만요. 사실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이 많은데 다행히 제 측근들은 결혼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이에요. 어떤 분들은 결혼하고 나서 결혼 빨리 하지 말라고 그러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아파요. 이렇게 좋은 걸 왜 빨리 하지 말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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