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여러분, 이 나라는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습니다. 대화를 막고, 저항할 자유를 주지 않고 있습니다. 저들은 감시 시스템을 통해 우리가 복종하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여러분의 침묵이 자초한 결과입니다. 저와 함께 일어납시다”
이는 지난 14일 중국 관영매체 CCTV6에서 방영된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에서 주인공 브이가 국민들을 향해 1년 뒤 함께 봉기할 것을 요청하는 연설내용이다. 이 영화는 2040년 3차대전 직후, 감시와 통제가 일상화된 전체주의국가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의 ‘브이 포 벤데타’ 방영이 놀라운 이유는 중국이 바로 영화 속 주인공이 비판하는 감시·통제 정부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인터넷을 검열하는 인력만 10만 여명이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공산당을 비판하는 내용을 인터넷에 올리면 공안으로부터 제재를 받게 된다. 정부가 지정한 ‘불건전’ 사이트에도 접속할 수 없다. 톈안먼 사건을 찾아볼 수 있는 위키백과의 접속은 자주 차단된다.
시민봉기를 그린 영화 ‘브이 포 벤데타’도 지금까지 검색이 금지된 영화목록이었다. 주인공 브이는 독재자를 심판하지 않은 재판소를 직무 유기를 했다며 폭파하고,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아온 관영 방송국을 습격한다. 시민들의 대화내용을 도청하는 사복 경찰이 사방에 깔려있고, 그 틈에서 브이는 당 총수와 주요 인사들을 암살하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런던 시민들이 모두 브이의 가면을 쓰고, 정부와 군에 대항해 봉기하는 모습이 나온다.
영화가 방영된 직후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徽博)에선 ‘브이 포 벤데타’가 주요 검색어에 올랐다. 한 네티즌은 “정부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니냐, 세상이 바뀌었다”고 적었고, 또 다른 네티즌은 “중국의 민주주의 개방이 미래로 다시 한번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홍콩의 동방일보(東方日報)는 17일 “영화채널인 CCTV6는 중국의 모든 언론을 감시·통제하는 광전총국(廣電總局) 직속이어서 당의 허가 없이 이처럼 민감한 내용이 포함된 영화가 방송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전했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가 언론과 선전을 총괄하는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의 방영허가를 받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중국에 언론자유가 올 것이라는 확대해석은 경계하는 입장이 많다. 베이징대 법학과 장첸판(張千帆) 교수는 “미디어 검열을 완화하겠다는 것이지 완전히 없애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