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전선하 기자] 배우 유하준은 SBS 수목드라마 ‘대풍수’(극본 남선년 박상희, 연출 이용석)에서 승려 신돈 역을 맡아 특별한 시도를 감행했다. 파르라니 하게 깎은 머리카락과 쏘아보듯 깊었던 그의 눈매는 신돈을 괴승의 이미지에서 불운의 시대를 어떻게든 이겨내려 신념으로 똘똘 뭉친 혁명가로 탈바꿈시켜 시청자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신돈은 기인의 이미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저는 그런 모습은 살짝만 보여주고 싶었어요. 대신 고려가 저무는 시기에 어떻게든 나라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돈과 명예욕에 물들어 결국 몰락하지만, 강하고 흐트러짐 없는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게 제가 해석한 당대를 살았던 신돈이라는 인물이었어요.”

그래서일까, ‘대풍수’ 속 유하준이 연기한 신돈은 기존 사극에 등장한 수많은 신돈 캐릭터 중 가장 말끔하고 분위기 있는 인물로 묘사되며 짧은 출연 분량에도 깊은 잔상을 남긴다.

“‘대풍수’에 출연한 건 연출을 맡은 이용석 감독님과의 인연 때문이에요. 예전에 사석에서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저에게 ‘말끔하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죠. 그러다 연락이 와서는 역할에 대한 설명 없이 다짜고짜 머리를 시원하게 밀 수 있느냐고 물으셨어요. 흔쾌히 ‘그럴 수 있다’고 말씀 드렸는데, 알고 보니 감독님께서 저를 두고 염두에 둔 캐릭터가 신돈이었던 거예요. 감독님께서 ‘대풍수’에서 등장시키고 싶은 신돈은 괴승이지만 멀끔한 모습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외적인 이미지 외에도 유하준은 이용석 감독이 추천한 역사서를 탐독하며 신돈이라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부단히 공을 들였다. 불자가 아니라서 승려 캐릭터를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고민될 때엔 동영상을 참고했고, 주변 배우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특히 함께 연기한 배우 안길강과 조민기의 유쾌한 배려는 유하준에게 느끼고 생각하게 한 바가 많다.
 
"현대극이 아니다 보니 말투에서부터 가벼운 행동까지 실은 막막하게 다가올 때가 많아요. 그럴 때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 특히나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 많은 것을 참고할 수 있는데 다른 것들은 모두 차치하고서라도 사극에서 드러내야 할 느낌이나 감정 같은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죠. 특히 안길강, 조민기 선배의 경우 작고 사소한 배려부터 시작해서 후배들이 주눅 들지 않고 연기할 수 있도록 힘 써주시는 분들이세요."

기승전결을 갖춘 자기만의 스토리를 가진 점 역시 의미 깊다. 유하준은 “지난해 ‘공주의 남자’에 출연했을 땐 1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등장했지만 역할이 미비했던 반면, 이번 ‘대풍수’에선 분량은 짧아도 이야기 중심에 들어가 극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었다”며 ‘대풍수’를 통해 “사극의 맛을 보지 않았다 싶다”고 자평했다. 그리고 이 같은 경험은 유하준에게 사극에 더 깊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사극은 현대극과 달리 정말 ‘드라마’를 찍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면이 있어요. 과거를 사는 만큼 시간을 초월하고, 또 그러다 보니 우리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때를 연기하는 점도 매력적이죠. 특히 사극의 경우 배우 입장에서는 현대물보다 좀 더 ‘캐릭터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장점이죠. 무엇보다 사극은 스토리 자체에 힘이 있는 것 같아요.”

특징 있는 인물을 연기하며 배우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맺는 등 ‘대풍수’는 유하준에게 기분 좋은 인상으로 남은 작품이다.

“만날 한복만 입고 있으니까 촬영장에서 배우들 사이의 유행어가 ‘청바지 입어보고 싶다’ 였어요. 중간에 제가 퇴장하니까 동료들이 ‘이제 청바지 입으러 가서 좋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죠. 거기에 저는 ‘머리에 왁스도 바를 거다’하고 받아치면서 기분 좋은 마무리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용석 감독님을 비롯해 선후배 배우들까지, ‘대풍수’는 제가 이제까지 경험해 본 촬영장 중에서 분위기가 가장 좋은 곳이었어요. 촬영 종료까진 아직 많이 남았지만 ‘대풍수’ 쫑파티도 놓치지 않고 모두 참석할 계획이에요.”

◆ 유하준, 계획이 아닌 꿈을 꾼다
 
유하준은 올해로 데뷔 10년차를 맞았다. 지난 2003년 영화 '써클'로 데뷔한 뒤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에 모습을 드러내며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배우로서 커리어를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혈기 넘치는 청년으로 마음이 이끌리는 일에 있어서는 물러섬 없는 과감한 선택도 했던 게 그가 돌아본 지난 10년간의 모습이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탈도 해봤고 방황도 있었죠. 데뷔 때는 지금 보다 젊었고 혈기도 왕성해서 그런지 연기 보다 더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게 있으면 전 그 일을 했던 것 같아요. 답답할 땐 여행을 훌쩍 다녀오기도 하고 배우생활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인테리어 작업을 해보기도 했어요. 또 지독하리만치 절절한 연애도 해봤고요. 지금 돌아보면 그런 시간들이 배우인 저에겐 약이 됐던 것 같아요. 반대로 생각했을 때 그런 일탈이 없었다면 더 안정적으로 연기했을 수도 있지 않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10년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 유하준은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한 기대와 생각들로 더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에 대해 ‘계획’이라는 단어가 아닌 “꿈을 꾼다”고 표현하며 자신의 생각을 들려줬다.

“돌이켜 보면 미안하면서도 감사한 시간이었죠. 그래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 차근차근 잘 왔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보다 저는 앞으로 5년이 기대돼요. 그때는 제가 마흔 살이 될 땐데, 바람이 있다면 사람도 멋있고 좋은 배우도 돼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꿈이에요.”

지난달 종영된 XTM ‘아드레날린’에 출연하며 캠핑을 취미로 삼은 것 역시 유하준의 10년 시간을 풍성히 채운 대목 중 하나다. 프로그램에 앞서 동료배우 이천희의 추천으로 캠핑을 다녀왔던 그는 가장 좋아하는 단어인 ‘낭만’을 고스란히 체험했다고.

“이천희 씨가 첫 캠핑 경험을 매우 좋게 남겨주셨죠. 저를 가만히 앉혀두고 별이 쏟아지는 설원 위에 텐트 쳐주고 고기 구워주면서 김광석 노래를 하루 종일 틀어줬거든요. 그야말로 낭만 그 자체였는데 제가 캠핑에 홀딱 반하도록 만들어 버린 거예요.”

이렇게 시작된 캠핑에 대한 사랑으로 유하준은 얼마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캠핑을 떠나는 것으로 보낼 계획이다.

“이천희 씨가 ‘아드레날린’ 끝나고 멤버 4인 중에 저한테만 캠핑용 랜턴을 선물해 줬어요. 와이프 몰래 사주는 거라면서 줬는데, 그 답례로 저는 스노우보드복을 선물했죠. 그러면서 정이 많이 든 것 같아요. 캠핑이라는 좋은 취미를 알게 해 준 만큼 좋은 사람들과 함께 또 다른 추억을 만들 겁니다.”

sunha@osen.co.kr
정송이 기자 ouxou@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