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유리 심장
양진채 소설집|문학과지성사
261쪽|1만2000원
무한 공간을 오가는 환상의 새, 가루다. 사람의 몸에 독수리의 머리를 가진, 눈빛과 부리가 매서운 신조(神鳥)다. 오랫동안 일부러 맹독이 있는 용만 잡아먹고, 결국엔 독이 쌓인 자신의 몸을 불태운다고 했다. 가루다가 불탄 자리에 남는 것은 푸른 유리처럼 맑은 심장. 양진채의 소설집 '푸른 유리 심장'은 마지막에 남는 푸른 유리 심장을 꿈꾸며 지옥 같은 하루를 견디고 있는 내상(內傷) 입은 현대인의 초상이기도 하다.
표제작 '푸른 유리 심장'은 어떤 모욕을 당해도 웃음을 잃지 않아야 하는 백화점 직원들의 감정노동을 여행객들의 비위를 맞추는 관광지 코끼리에 빗댄다. 명령에 복종할 때까지, 날카로운 창으로 쉬지 않고 이마를 찌르고 때려서 길들인 코끼리. 3박4일을 줄기차게 찌르고 때리면,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야생성은 파괴된다. 멀리서 보면 우람하고 거대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해진 모포 자락 같은 귀, 버짐 앓듯 듬성듬성 난 털, 상처 딱지 같은 피부로 점철된 초라한 육체. 작가는 원초적 야성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한계를, 단정하고 품격 있는 문장과 치밀한 묘사로 차분하게 전달한다. '플러그 꽂는 시간' '봄날의 테이블보' 등 9편의 단편을 모았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2008년 당선자의 첫 소설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