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계나 방송계 모두 '20대 여배우 기근(飢饉)' 현상을 겪고 있다. 웬만큼 히트한 영화와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의 대부분이 30대 이상이다. 영화·드라마 제작자와 감독들은 "20대 여배우를 주연으로 쓰고 싶어도 마땅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고 한다.
우선 올해 한국 영화 흥행 20위 안에 든 작품 중 주연을 맡은 여배우는 사실상 '늑대소년'의 박보영 한 사람뿐이다. 스타성으로 치면 '광해'의 한효주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의 극중 비중은 주연 남자배우인 이병헌·류승룡 등에 한참 못 미친다. 드라마도 올해 시청률 1~3위인 '넝쿨째 들어온 당신'(김남주·41) '해를 품은 달'(한가인·30) '신사의 품격'(김하늘·34)의 여자 주인공은 모두 30대 이상이다.
20대 여배우 기근의 원인에 대해 김호성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외모와 재능을 갖춘 10대 후반~20대 여성들이 배우보다 아이돌 가수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돌로 성공한 다음 연기에 도전하지만, 연기력도, 배우로서의 자세도 갖춰져 있지 않아 영화 주연을 맡기긴 힘들다"는 것이다.
20대 여배우들의 자질·도전의식 부족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한 영화 감독은 "20대 여성이 주연인 시나리오를 구상했지만 배우를 못 찾겠다. 전도연이 영화 '해피엔드'에서 노출 신을 찍을 때가 26세였다. 요즘 20대 여배우들은 광고를 신경쓰느라 몸을 사리고, 고생하며 영화 찍기보다 예능 프로그램이나 패션 행사에 나가 인지도를 높이는 데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고 꼬집었다.
'20대 여배우들의 과도한 성형'도 거론된다. "얼굴의 결핍을 연기로 채우고 매력을 더하는 게 진정한 배우다. 하지만 요즘 성형을 많이 한 20대 여자 연기자들의 얼굴에선 페이소스(동정 혹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표현방식)가 느껴지질 않는다"(김호성 대표)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20대 여배우들을 공동 주연으로 내세운 작품이 흥행에 참패하자 "성형과 시술을 많이 한 여배우들의 어색한 표정 연기가 관객의 몰입을 방해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남자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들이 흥행을 주도하는 흐름이 있고, 30대 이상 관객들이 늘어나면서 20대 여배우들이 주연을 할 만한 영화 자체가 없다"고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찬일 프로그래머도 "지금까지 10~20대 관객에게 초점을 맞춰왔던 한국 영화의 외연이 넓어지면서 이제는 30대 이상 관객들을 위해 30대 이상 여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20대 여배우 기근이 계속되면 20대 역할을 30대 이상 배우들이 맡으면서 극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린다. 지금의 30대 배우들이 더이상 20대 역할을 할 수 없는 시점이 오면 영화 제작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한다. 영화 '코리아'에선 극중 각각 21·22세인 두 여주인공을 30대인 하지원(34)과 배두나(33)가 연기했다. 드라마에서도 20대 남자 주인공과 5~10세 차이가 나는 30대 여배우들이 러브라인을 만드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제작자들이 인지도에만 너무 매달리지 말고 좀 더 과감하고 개방적인 자세로 20대 여배우들을 기용하면, 이들도 앞으로는 주연급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