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은 소설을 쓸 때, 자기들이 하느님이라도 되듯 그 누군가의 인생사를 훤히 내려다보고 파악하여, 하느님이 몸소 이야기하듯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이 어디서나 핵심을 짚어내어 써낼 수 있는 양 굴곤 한다. 나는 그럴 수 없다, 작가들도 그래서는 안 되듯이. 그리고 내게는 내 이야기가, 어떤 작가에게든 그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내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1877~1962)는 1919년 이 작품을 가명으로 발표했다. 작품성만으로 평가받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헤세가 창조한 유령 작가의 이름은 에밀 싱클레어. '데미안'을 쓴 가공의 인물 에밀 싱클레어는 독일 유력 문학상인 폰타네상의 수상자로 지명됐고, 헤세는 진실을 밝히고 수상을 사양했다.
주지하다시피 '데미안'은 자아의 삶을 추구하려는 한 젊음의 통과의례 기록이다.
"내 속에서 솟아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라는 짧은 제사(題詞)가 이 성장소설의 문제의식을 압축한다. 작가의 필명이자 소설 속 주인공이기도 한 에밀 싱클레어는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한다. 명암이 엇갈리는 이 두 세계는 해맑은 유년과 책임의식 강한 유년의 반목이며, 자유의지와 도덕·종교 사이의 불화이고, 카인과 아벨의 대립이기도 하다.
하지만 싱클레어는 친구 데미안과의 만남과 충고를 통해 차츰 이 둘이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분류할 수 있는 명쾌한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총 8장으로 구성된 '데미안'은 구도자 싱클레어를 통해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차분하게 읊조린다. 내 질문의 해답을 남이 찾아줄 수는 없다고, 답은 결국 자신에게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