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위손'

한국영화의 크리에이티브가 사라졌다는 지적이 영화계 안팎에서 일고 있다. 관객들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 작품들이 세계시장 점유율 80%의 할리우드 영화의 아류 아니냐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언젠가부터 한국영화가 대놓고 베끼기를 하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하는 영화 마니아도 있다.

올해 대종상을 싹쓸이한 ‘광해, 왕이된 남자’는 ‘데이브’(1993), 한국영화 관객수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도둑들’은 ‘오션스 일레븐’(2001)을 연상시킨다는 의견들이다. 전통무기 활을 이용한 한국적 액션무비로 찬사를 받은 ‘최종병기 활’(2011)은 ‘아포칼립토’(2007)와 닮은꼴이다. 흥행몰이 중인 ‘늑대소년’(2012)도 ‘가위손’(1990)과 묘한 기시감을 일으킨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지만 스크린쿼터(자국영화 의무상영제도)까지 가동시켜가며 지키고자 한 한국영화의 산업적 측면뿐 아니라 고유성, 창작력이 사라지는 데 대한 우려가 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상업영화로서 장르영화의 문법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라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실제 ‘도둑들’은 케이퍼 무비(하이스트 필름)라는 범죄영화의 하위장르 중 하나로 범죄자들이 모여 치밀하게 범죄를 모의하고 시행하는 오락영화로서의 전형을 밟고 있다는 점에 크게 이견이 없는 듯하다. 최동훈 감독도 “별로 많이 만들어지는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나 설정 같은 건 있겠지만 얼마나 다르게 방향을 선회하느냐의 문제가 핵심인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늑대소년’도 ‘가위손’에 대한 오마주로 봐야하는 지에 대한 논란을 제쳐두고라도 ‘렛미인’, ‘트와일라잇’ 등 각종 로맨틱 판타지 무비가 연상된다는 평이다. 어쨌든 대중지향 감성몰이에는 성공적이다. 조성희 감독은 “이야기의 플롯은 공공재산이라는 말이 있더라”며 떳떳하다는 입장이다. 표절시비까지 불러일으킨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은 “추적의 서사를 차용했다”고 했고, 일부 관객들이 리메이크로 봐야하는 것이 아니냐고까지 주장하는 ‘광해’의 추창민 감독은 YTN에 출연해 “창의성이 풍부한 영화가 아니다”는 점을 인정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영화는 그 단계를 벗어난 지 오래다. 임권택, 김기덕, 박찬욱, 홍상수, 봉준호 등 이미 그 독창성과 예술성으로 인정받은 유수의 감독들이 포진해있다. 이러한 가운데 할리우드식 영화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것은 일종의 퇴행이다. 미국 내에서 이러한 장르영화를 낳은 스튜디오 시스템은 ‘파라마운트 판례’로 1950년대 초반 막을 내렸다. 흥행 실패의 리스크를 낮추고 안정적 이윤창출을 위해 일반적인 관객의 기호와 취향에 맞는 오락성 영화만을 반복, 재생산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소위 장르영화다.

물론 일반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이러한 영화군도 필요하다. ‘킬링타임용’ 영화라는 말도 있듯이 관객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고,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줄거리와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쉬운 흐름의 영화도 나름의 역할과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흥행영화마다 이렇게 콘셉트, 줄거리, 대사까지 광범위하게 할리우드 영화의 틀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은 그저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영화는 그 어떤 예술장르보다 자본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기획과 시나리오 집필, 연출을 제외하고도 각종 촬영장비부터 훈련된 배우와 스태프 기용에까지 만만치 않은 비용을 들여야한다. 무엇보다 관객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극장이라는 일정한 공간을 대여해야한다. 상영관만 확보된다면 영화의 질과 상관없이 어느 정도의 관객동원은 가능하다.

이러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에 현 국내영화계에서는 특히 투자, 배급, 상영이 수직계열화를 이룬 ‘수직통합체계’가 문제가 된다. CJ(CGV), 롯데엔터테인먼트(롯데시네마), 씨너스와 통합한 메가박스 등 3대 멀티플렉스 체인의 입김이 절대적인 구조가 됐다. ‘광해’는 CJ가 아예 기획·개발에까지 간여했다.

멀티플렉스의 폐해를 지적해온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 황금사자상 수상 기자회견에서 “좌석점유율이 15% 미만인데도 여전히 천만의 기록을 내기 위해 안 빠져 나가더라. 그게 도둑들 아닌가 싶다”며 영화 ‘도둑들’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돈이 다가 아니지 않나. 편법과 독점, 무수한 마케팅에 아무리 착한 나도 화가 난다”고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보도에 따르면 “영화를 10회차 촬영할 때마다 현장 가편집본을 투자배급사에 의무적으로 보내주고, 영화의 최종편집권도 4~5년 전부터 제작사에서 투자배급사로 넘어갔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투자배급사가 작품의 내용까지 간섭하고 심하면 감독이 교체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윤확보를 1차적 목표로 하는 상업영화의 목적성을 최우선에 두다보니 기존의 검증된 흥행코드를 강요하게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여기에 리스크는 제작사가 떠안는 등의 불공정거래까지 더해지면서 이러한 환경은 한국영화의 창조력 저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메이저 배급사의 독과점행태로 작품성 높은 영화가 설 자리가 좁아지리라는 예견은 수년전부터 있어왔다. 경우가 좀 다르긴 하지만 2006년 영화 ‘홀리데이’가 조기종영됐을 때 당시 제작사인 현진씨네마 이순열 대표는 국내 최대 한국영화 배급사인 CJ의 횡포를 지적하며 “이러한 상황이면 앞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힘있는 투자배급사의 눈치를 보며 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올 것이다. 향후 이것이 한국영화계의 침체를 몰고 올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여전히 선댄스 등 독립영화제로 발굴된 참신한 신진감독들의 창의성을 할리우드 시스템이 망쳐놓는다는 시각이 있지만 ‘파라마운트 판결’로 현 국내세태와 같은 극단적인 폐해는 차단됐다. 1948년 미국 대법원은 5개 메이저 스튜디오(MGM, 파라마운트, RKO, 워너 브러더스, 20세기 폭스)에 대해 영화 제작, 배급, 상영을 수직적으로 통합한 것은 독점 금지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3개 마이너 스튜디오(유나이티드 아티스츠, 컬럼비아, 유니버설)에게도 영화관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결과 독립영화들과 유럽영화들이 미국 시장에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모든 영화가 개별 영화의 경쟁력만으로 승부해야했다.

지금과 같은 재벌의 독점적 배급행태가 지속되면 영화제작도 이러한 시스템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감독의 작가정신은 발붙일 자리를 잃고 새로운 시도나 파격적 실험은 원천봉쇄된다. 장기적으로는 문화적 다양성의 퇴보를 불러오고, 이것이 한국영화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리라는 것은 쉬 짐작할 수 있다.

류철균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필명 이인화)가 개발한 디지털 스토리텔링 소프트웨어 ‘스토리헬퍼’가 화제다. 2300편이 넘는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분석해 대표 스토리 모티브(상황) 205개를 마련했고 이것의 조합으로 이야기 데이터베이스 3만4000여개를 정리했다. 이 시뮬레이션을 작동해보면 ‘광해’는 ‘데이브’와 75%, ‘최종병기 활’과 ‘아포칼립토’는 79%가 비슷하다고 한다. 또 ‘아바타’와 ‘늑대와의 춤을’의 유사성은 87%,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스타워즈 에피소드 4’의 싱크로율도 80%이상이라고 한다.

그는 "서사의 패턴은 한정돼있다"며 "영화 역사상 2만4000편의 영화 중 90%는 잘 만들어진 이야기의 아류이고 익숙한 패턴 속에서 독창성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인화의 소설 데뷔작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는 국내외 소설을 짜깁기한 표절이라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류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혼성모방 기법일 뿐이라고 본명으로 평론을 써 해명했다. 차기작 '영원한 제국'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표절한 것이냐, 패러디한 것이냐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이 각종 표절논란의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잊지 말아야할 것은 어떤 스타일의 전형도 처음에는 누군가의 창조로 시작됐다는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