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랑과 전쟁'에 당장 투입해도 될 소재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A라는 여자는 "내 남자(C)에게서 꺼져"라며 B를 협박했고, B는 A를 고소했다. 이 과정에서 A와 C와의 불륜 사실이 들통났다. 나라가 뒤집혔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다. '선의의 피해자'로 보였던 B가 D라는 남성과 이메일을 통해 부적절한 언사를 나눴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C와 D는 업무상 직속 선후배였다. 4명의 유부남녀의 서로 물리고 물리는 이 관계 때문에 미국이 들썩이고 있다.

미국 최고위급 군 장성과 미모의 유명 작가, 사교계의 여왕이 연출·감독·주연한 이 '막장 드라마'는 치정·불륜·지저분한 싸움뿐만 아니라 미국 안보 문제까지 건드리며 그야말로 대하드라마로 발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불륜 당사자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사임했고, 미모의 작가로 명망이 높았던 폴라 브로드웰은 전도유망한 여성에서 하루아침에 '불륜녀'로 낙인찍혔다.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린 '제3의 여인' 질 켈리(Kelley)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처음엔 '용기있는 목소리'인 줄 알았지만, 조사 과정에서 그녀가 존 앨런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사령관과 '부적절한 내용의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구설에 올랐다. 미국 현지 언론은 14일(한국시각) "퍼트레이어스 스캔들 밑에 또 하나의 스캔들이 있다. 이 사건의 핵심인 질 켈리는 과연 누구인가"라며 질 켈리에 관한 여러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한마디로 조연급에서 특급 주연으로 전격 발돋움한 것이다.

미 폭스뉴스 등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앨런 사령관과 켈리의 e-메일 내용이 의혹을 가질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어 추가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2만~3만 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이메일에는 서로 '자기야(sweet heart)' 등으로 부르는 등 부적절한 관계였음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있었다고 해외 언론은 보도했다. 앨런은 2011년 퍼트레이어스의 뒤를 이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사령관으로 임명됐으며, 내년 유럽주둔 미군 사령관 겸 NATO군 사령관으로 전보될 예정이었으나 이번 스캔들로 전면 보류됐다.

이번 사건의 핵심인 질 켈리는 미 플로리다주 탬파베이에 사는 부유한 여성으로, 한마디로 '사교계의 여왕'이다. 유명 기도암(癌) 전문의 남편과 세 자녀를 뒀으며, 군 장성을 위한 파티를 자주 열며 고위급 인사들과 친분을 다졌다고 한다. 쌍둥이 언니와 함께 이 지역에선 알아주는 '패셔니스타'(트렌드를 주도하는 사람)이었는데 최고급 브랜드 의상을 입고 링컨 차를 타고 다니며 각종 파파라치도 몰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켈리는 탬파에 있는 미 합동특수전사령부(JSOC)와 맥딜 공군기지에서 공식 직함 없이 군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일을 하면서 앨런과 인연을 맺었다. 2008년부터 둘의 친분은 계속됐는데 당시 퍼트레이어스는 중부사령부 사령관이었고, 지금 문제의 앨런은 당시 부사령관이었다.

하지만 켈리와 앨런과의 관계가 실제 '부적절한 관계'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있다. 켈리가 워낙 '오지랖'이 넓은 스타일이어서 군 장성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을 뿐 실제 육체적 관계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군장성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스윗하트'라는 표현은 앨런의 고향에서 일반적인 애칭으로 부르는 것이지 로맨틱한 관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이메일 중 추파성 내용이 있다고 해도 '어제 드레스 예쁘다' 수준을 크게 넘나들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의 오빠인 데이비드 카왐은 "켈리가 자신은 잘못이 없고 희생자라고 하더라"고 CNN에 말했다.

켈리의 한 지인은 "그녀는 허영심이 워낙 크고 파티 여는 걸 좋아해 현재 빚더미에 올라있다"고 전했다. 매년 군 장성을 위한 대규모 파티를 여는 데, 이 때문에 수십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이 담보권 행사를 위해 부동산 두 곳을 가압류 했고, 일부 채권자들은 그녀를 고소했다고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돈 쓰기 좋아하고 과시욕에 찬 여성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탬파베이 지역 언론에 따르면 켈리는 현재 9건의 소송을 당한 상태이다. 법원은 켈리 부부에게 탬파 시내 3층짜리 건물을 매각해 센트랄 은행으로부터 빌린 220만 달러를 갚으라고 명령한 바 있다. 켈리의 쌍둥이 언니 나탈리는 파산 신고를 했는데, 법원에 저당 잡힌 물건이 6개의 샤넬 백, 카르티에 시계, 5만 달러짜리 다이아몬드 보석 등이었다. 아이 양육권 분쟁에도 휘말렸는데, 퍼트레이어스와 앨런이 법원에 '선처를 호소하는' 이메일을 보내 나탈리의 신원을 보증해준 적도 있다.

한편 질 켈리는 한국의 명예영사(honorary consul)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켈리가 탬파 지역 저명인사라는 훌륭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명예 영사를 맡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 잡지에 따르면 "켈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는 일을 도왔고, 주미 한국 대사가 탬파를 방문했을 때 지역 재계 인사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며 "한국과의 관계 증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밝혔다. 1963년 채택된 '영사관계에관한비엔나협약'에 따르면 명예영사는 어떤 명확한 특권을 갖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