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남 ㈜더타워픽쳐스 대표

나의 영화 동료들이나 후배들이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 있다. "야한 영화는 또 안 만들어요?" '미인'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애인' 등이 나의 영화 이력에 자리 잡고 있으니 동료들이 그런 얘기를 할만도 하다.

보통 성(性)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마케팅의 영역에서 '베드신'이나 '노출 수위' 등으로 포장돼 작품이 표현하고자 한 의도나 주제는 아예 감춰져 버리곤 한다. 하지만 '야동'이나 '에로영화'와는 달리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사실 더욱더 철저히 계산돼야 한다. 주요 타깃층인 여성들이 극장을 찾아올 수 있도록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야기는 여주인공의 심리나 감정을 주로 따라가고, 남자주인공은 매력적이거나 잘 생긴 사람을 캐스팅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 철학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을 고급스럽게 표현해야 관객이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많은 경쟁과 직장 또는 가정에서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남편과 주부들, 그리고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적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 청소년·청년 등 수많은 이에게 '야한 영화'는 도피처가 되고, 즐거움이 되고, 대리만족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야한 생각'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야한 영화'의 노출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그런 부담스러움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성'에 대한 성숙하고 밀도 있는 성찰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초이다.

'성'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어린 시절부터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긍정적이고 성숙한 성에 대한 생각이야말로 사회가 건강해지는 또 하나의 지표이다. 나는 기회가 된다면 더욱더 '야한 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단, 인간을 소중히 바라보는 철학적 사유와 '관계'라는 사회학적 사유의 관점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