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루이스 쇼(왼)와 그의 일본인 부인 사이토 후미

중국 단동에서 ‘이륭양행’이라는 무역회사 겸 해상운수회사를 운영하던 아일랜드계 영국인, 조지 루이스 쇼.

상해에 임시정부가 세워지던 1919년,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이륭양행’ 2층을 임시정부 비밀 정보국으로 내어준다. 더불어 백범 김구, 동농 김가진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지사들의 탈출을 돕는 한편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폭탄, 비밀 정보 등의 전달에 앞장서 우리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전설적인 인물’로 여겨졌다.

이에 일제는 영국과의 외교적 마찰까지 불사하며 조지 쇼를 내란죄로 체포하기에 이르는데…. 그토록 위험을 무릅쓰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나라 독립운동에 헌신한 조지 쇼는 과연 누구인가?

일제 강점기에 한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푸른 눈의 이방인, ‘얼굴 없는 테러리스트’로 불렸던 영국인 조지 루이스 쇼의 한국 독립 투쟁기를 ‘KBS 역사스페셜’이 3년 간에 걸쳐 영국·중국·일본 3개국을 현장 취재, 11월1일 오후 10시 새로 발굴된 사실들을 보도한다.

-50년 만에 수여된 훈장
1963년, 정부는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한 공로를 인정해 조지 쇼를 '건국공로훈장단장'에 추서했고 이 푸른 눈의 이방인은 대한민국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얼굴 없는 테러리스트'라 불릴 만큼 모든 것이 베일에 쌓여있던 그의 행적은 이후 후손들조차 찾을 수 없었다.

제작진은 영국, 중국, 일본에 걸쳐 3년간 끈질긴 추적을 진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조지 쇼의 손녀를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이를 통해 조지 쇼의 훈장은 올해 8월, 추서된 지 반세기만에 드디어 주인의 품에 돌아가게 됐다.

-임정 비밀 아지트 '이륭양행'
독립투사들에게 '철통 요새'로 불리며 임시정부와 국내를 연결해주는 안전통로로 독립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임정 교통국이 들어가 있던 조지 쇼의 '이륭양행' 건물. 그런데 제작진은 취재 도중 '이륭양행'을 둘러싼 새로운 문제를 확인했다. 지금까지 알려져온 '이륭양행'의 위치가 잘못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중국 단동시 당안국(국가기록 보관소)을 찾은 제작진은 그동안 전혀 공개된 적 없는 ‘이륭양행’에 대한 새로운 자료들을 발굴한다. 이를 통해 이륭양행의 위치에 대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한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던 이륭양행 창고, 그리고 독립투사들의 은신처로 제공된 조지 쇼의 집을 찾아냈다.

- 3代에 걸친 일본과의 인연
1920년, 내란죄 혐의로 구속됐던 조지 쇼는 영국 정부의 강력한 항의로 수감 5개월만에 풀려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이지 석방 이후, 그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일본외무성을 찾은 제작진은 외교사료관 문서 속에서 조지 쇼의 이름을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일제는 조지 쇼의 독립운동 지원을 막기 위해 대안기선공사라는 해운회사를 설립해 탄압하기도 했다. 새롭게 발굴한 기록들을 통해 조지 쇼가 석방 후에도 변함없이 항일 활동을 계속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를 극도로 싫어하며 평생을 항일운동에 바쳤던 조지 쇼는 놀랍게도 일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피의 인연을 갖고 있었다. 조지 쇼의 아내는 일본인 여성 '사이토 후미'. 뿐만 아니라 '중국인'으로 알려져 있었던 조지 쇼의 어머니가 사무라이 집안 출신의 일본인임이 취재를 통해 밝혀졌다.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쇼의 아들 역시 일본 여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결혼증명서를 통해 밝혀졌다. 일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일본 여인과 결혼하고 일본 여성을 며느리로 둔 조지 쇼.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독립운동에 헌신한 '쇼' 집안의 남자 3대가 모두 일본인과 결혼한 것이다. 게다가 조지 쇼의 동생과 일본인 아내 '사이토 후미'는 남편을 도와 항일운동과 한국 독립운동 지원에 함께 했던 사실도 현장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이 프로그램의 연출자인 이원혁PD는 "얼굴없는 테러리스트라 불렸던 조지 쇼의 신원을 추적한 지 3년여 만에 후손이 훈장을 되찾게 돼 큰 보람을 느낀다"며 "앞으로 정부가 우리 독립운동에 기여한 외국인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포상하는 것이 글로벌 시대의 보훈정신이라 생각한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