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50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경제정책에 대한 갑론을박은 실종되었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유력한 세 후보의 경제 공약이 '경제 민주화'라는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름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재벌을 이대로 둘 수 없다는 현실인식에서 출발해서 재벌의 편법과 불법행위를 엄단하고,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고, 나아가 지배구조까지 수술하겠다는 요지는 대동소이하다.
경제 민주화라는 깃발 아래 성취하려는 재벌 오너의 사익(私益) 추구 행위 금지, 소액주주 보호, 시장지배력 남용으로부터 피해 기업과 소비자 보호,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관행의 시정 등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정부 경제정책의 주요 목표이며 관련 법들이 집행되고 있다. 새로운 것은 이런 정책목표 추진을 위해 더욱 과감하고 강력한 정책수단을 강구한다는 점과 경제 민주화가 부족해서 한국 사회의 양극화가 심각해졌다는 인식의 두 가지이다.
경제 민주화가 시대정신이라는 주장의 이면에는 그래서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많은 판례에서 천명했듯이 기업 규제는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고려한 과잉금지 원칙의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 민주화의 필요성만 강조하고 경제 민주화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충분조건(한계)은 경시한다면 그 정책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 명확하다. 규제이익을 초과하는 규제비용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피라미드 및 순환출자 구조인 한국 대기업집단의 조직구조를 한국만의 예외적인 현상으로 보고 만악(萬惡)의 근원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피라미드 출자에 기반해서 소유 경영자가 지배하는 기업집단은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는 기업조직 형태이며 기업 지배구조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통한 지배주주의 사익 편취 행위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협력 중소기업 약탈행위에 대해서 엄정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대기업집단의 구조 자체를 위법적인 것으로 보고 사전(事前)적인 행정 규제로 접근하려는 방향성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한국 대기업의 성공 비결인 미래를 내다보는 과단성 있는 경영을 가능케 하는 구조를 왜 우리가 나서서 차단해야 하는지 의아해진다.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과 디지털 정보통신 기술의 보편화에 따라 선진경제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의 책임을 대기업에 돌리는 것은 비역사적이고 비과학적이다. 한국 사회 양극화의 핵심은 600만 영세 자영업자들이 도소매·숙박·음식 등 업종에 몰려 있고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이들 간의 차별성 없는 경쟁이 하우스푸어와 워킹푸어를 양산해 낸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지속되는 이면에는 불합리한 세제, 서비스 빅뱅을 저해하는 행정편의 위주의 규제, 창업 훈련의 부족 등 난맥상이 뿌리 깊게 연결되어 있다. 양극화의 주범이 재벌인 것처럼 생각하는 인식, 재벌 개혁 중심의 경제 민주화만으로는 이런 핵심에 조금도 접근할 수 없다.
결론은 자명하다. 대선주자들이 지금 내세우는 경제 민주화로는 한국 경제의 문제를 풀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헌법 정신과 배치되는 과잉규제를 양산하여 기업활동을 위축시킴으로써 경제의 역동성을 저해할 우려가 크고, 사실과 다른 인식에 기반한 정책 처방은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유력 대선주자들의 경제 민주화 공약은 뜨거운 가슴보다는 냉철한 머리에 기반한 실현 가능한 공약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당선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집권 후 통치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