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의 전통시장인 통인시장 입구에 얼마 전 '대문'이 섰다. 도리(서까래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에 가로지르는 나무)에 서까래를 걸친 모양이 한옥을 연상시키지만 그 위에 얹은 유리 지붕은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이 문은 건축가 황두진(49·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씨 작품이다. 침체돼 가는 전통시장에 디자인으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작업이다. 한옥의 구조를 활용하면서 다른 조형물과 차별화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 문화부가 주최하는 '2012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황 대표는 창호지를 바른 창문, 온돌처럼 따뜻한 벤치 등 한옥을 응용해 스웨덴 스톡홀름 동아시아박물관 한국실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최근 통인시장에서 만난 황 대표는 "한옥의 구조를 현대적으로 응용했다는 점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고 했다.
그는 "이 문을 설계하면서 외줄타기를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시장이 있는 서촌(경복궁 서쪽 지역)이 역사가 깊은 지역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느낌을 살리고 싶었어요. 동시에 현대적인 도시에도 어울려야 하니까, 정통 한옥과 아주 현대적인 건축 사이에서 적당한 중도(中道)를 지키는 게 어려웠지요."
일단 기둥이 3개인 점이 특이하다. 시장 입구 양쪽에 기둥을 하나씩 만들고, 찻길 쪽으로 걸음을 성큼 내딛듯 기둥 하나를 더 세웠다. 황 대표는 "과거 통인시장 입구는 큰길에서 보면 건물 사이로 움푹 들어간 곳에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았다"며 "입구가 돋보이도록 길 쪽으로 기둥을 하나 더 세웠다"고 했다. 인도 쪽에 기둥을 하나만 둔 건 "소방차나 화물차가 편하게 시장에 드나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둥 위에 올라간 서까래·도리 등의 구조물은 겉에서 보면 나무지만 실제로는 철제 뼈대를 나무가 샌드위치처럼 감싸고 있다. "나무만으로 이 구조를 만들려면 부재가 지금보다 훨씬 굵어야 해요. 그렇게 되면 기존 아케이드식 천장의 가는 철제 구조물과 비례가 어긋나게 되죠. 때문에 목철(木鐵) 합성 구조를 사용해 경쾌한 느낌을 유지했습니다."
황 대표는 '문화와 예술이 함께하는 전통시장 조성사업'을 펼쳐온 종로구청과 문화예술 전문 민간단체 'AEC 비빗펌'의 의뢰를 받아 이 문을 설계했다. 통인시장 길 건너편에 자택 겸 사무실을 둔 황 대표는 "이 문이 시장의 인지도를 높여 자생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