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5월 부산 동의대 학생 시위를 막다 순직(殉職)하거나 다친 경찰 18명에 대한 보상 절차가 다음 달 1일 시작된다. 지난 2월 제정된 '동의대 사건 희생자 명예 회복 및 보상 법률'에 따른 것이다. 사건 발생 23년 만이다.

동의대 시위는 1989년 3월 한 교수가 입시에 부정이 있었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교문 밖으로 나온 시위대는 5월 2일 진압 전경 5명을 끌고 가 교내 도서관에 감금했다. 경찰이 그들을 구출하려고 3일 새벽 도서관에 진입하자 시위대는 복도에 석유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져 순식간에 현장은 불바다가 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4명과 전경 3명이 불에 타 숨지고 11명이 부상했다.

대법원은 1990년 6월 이 사건 관련 학생 31명에 대해 방화치사죄(罪)로 무기징역에서 징역 2년까지를 선고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발족한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2002년 사건 관련자 46명을 민주화 운동자로 결정하고 1인당 평균 2800만원씩 보상금을 지급했다. 경찰관의 목숨을 앗아간 방화범들은 '민주 헌정 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민주화 운동 보상법 2조) 유공자가 되고 불법 시위 진압에 나섰다 순직한 경찰관은 졸지에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정권의 하수인이 돼버렸다. 숨진 경찰과 전경 유족들에게 주어진 건 공무원연금법과 군인연금법에 따른 단순 유족 보상금 368만~1890만원이 전부였다.

유족들은 2005년 심의위의 결정이 고인들의 명예를 떨어뜨렸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법재판소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却下)했다. 그 후 경찰 총수들은 사건 발생 20년이 흐르도록 순직 경찰관 추도식에 얼굴도 비치지 않았다. 당시 전신 화상을 입은 한 전경은 전역 후 몇 번씩 재수술을 받으며 정부의 냉대(冷待)에 울분을 삭여오다 4년 전 간암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를 출범시킨 정권은 "일시적으로 거꾸로 해석된 역사는 반드시 재해석된다"고 했다. 동의대 사건 희생 경찰관들의 뒤늦은 복권(復權)과 명예 회복은 '특정 정권의 이념적 편향에 의해 잘못 해석된 역사는 반드시 훗날 재해석된다'는 사실을 역설적(逆說的)으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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