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열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예비역 육군소장

대한민국에 '노크 귀순'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생겼다. 북한군이 우리 경계 부대의 내무반 문을 두드려 귀순 의사를 밝힐 때까지 아무런 저지를 받지 않은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의 충격은 그만큼 컸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을 믿을 수 있느냐는 근원적인 불신이 폭발적으로 증폭되고, 발 뻗고 편히 잘 수 없다는 불안감이 엄습한 것이다. 휴전선 철책을 지키면서 중대장과 대대장 생활을 한 예비역 장성으로서 한없이 부끄럽고, 국민에게 사죄하고 싶은 심정이다.

전쟁의 원칙 중에 '기습(奇襲) 원칙'이 있다. 이것은 상대방의 경계 실패를 전제로 한다. 1941년 12월 7일 아침, 하와이 진주만이 기습당해 미국이 자랑하던 태평양함대의 전함(戰艦) 다섯 척과 비행기 118대가 격파됐다. 100만명 이상 인명 피해를 내며 우리 국토를 초토화한 6·25전쟁도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일어났다. 당시 국군이 경계에 실패한 것이다. 경계 실패는 이처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군인들은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번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고 경계 태세를 강화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인가. 첫째,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군인 정신 함양이다.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집단에서 허위 보고는 용납되지 않는다. 전사(戰史)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허위 보고는 바로 작전의 실패로 이어진다. 그리고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지휘관이 초기 단계에서 국민에게 사죄하고 진퇴(進退)를 결정해야 한다.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정신으로 원인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둘째, 경계 태세를 다잡아서 유사한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경계 취약 지역을 재분석하고, 시기별·지역별 감시가 제한되는 지역을 식별하여 보강해야 한다. 제대(梯隊)별로 가용(可用) 역량을 집중하여 근무 방법과 초소를 조정하고, 장애물을 보강하며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장비는 보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철책 경계는 어렵고 힘들다. 지휘관과 간부가 솔선수범하여 힘든 시간에 순찰하고 함께 근무하지 않으면 장병은 나태하게 된다.

셋째, 상황 보고 체계 개선이다. 상황 보고 절차와 방법을 더욱 구체화하고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 근무 장교의 보고 누락으로 더욱 큰 문제가 된 데서 알 수 있듯이 상황 근무자의 기강을 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적시의 정확한 상황 보고가 필요하고 상황 처리 과정에서 자의적인 해석과 융통성은 배제해야 한다. 군인들이 제자리에서 제 몫을 다할 때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여 현대화한 지휘 통제 시스템은 빛을 발할 수 있다.

넷째, 참모총장의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번 실패의 근원적 배경인 군의 기강은 교육 훈련에서 비롯된다. 이는 참모총장의 책임이다. 전방 부대에 우수 자원을 배치하고 관리하는 일과 장애물 처리 및 시설 보강을 위한 예산 편성 등도 참모총장의 업무 영역이다. 그런데 이번 논란에서 육군참모총장은 빠져 있다. 이는 참모총장이 작전 지휘 라인에서 배제돼 있기 때문인데 이런 현실적 불합리는 해소돼야 한다.

국민은 소중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충성을 다하며 묵묵히 임무를 완수하는 대다수 국군 장병을 믿는다. 조국을 위해 젊음을 바쳐 희생하고 있는 그들의 명예가 도매금으로 더럽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장병들도 조국을 지키는 일은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바로 우리 군인들이 표상으로 모시는 충무공의 '멸사봉공(滅私奉公)' 정신이 지향하는 목표요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