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있는 악역이다. 그래서 선택했다.'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에서 악녀본색을 드러내며, 점점 더 다크해져 앞으로 무슨 짓을 벌일 지 모르는 한재희 역에 박시연이 인터뷰중에 했던 말이다. 즉 한재희(박시연)는 이유있는 악녀지, 이유없는 싸이코가 아니란 얘기다. 다만 그 이유란 게, 시청자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느냐에 따라, 한재희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주 방송된 '착한남자' 9회와 10회가 끝나고 나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강마루(송중기)와 서은기(문채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면적으로 읽힌 한재희는 주목받지 못했다. 입체적인 악녀캐릭터를 기대했던 시청자에겐 식상한 이미지로 실망감을 줄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한재희는 악녀포지션을 지키느라, 자칫 '이유없는 사이코'로 비쳐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착한남자'속에 한재희는 박시연의 말대로, 이유있는 악녀가 맞다. 그녀가 존재해야만 캐릭터가 균형을 이루고 드라마가 완성된다. '착한남자' 9회에서 은기와 마루의 차가 충돌했다. 그 교통사고 인해, 은기는 기억상실증에 걸렸고, 마루는 뇌막혈관이 파열돼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보다 주목할 점은, 교통사고 이후, 강마루가 '한재희'를 닮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희생을 소비하는 삶. 재희가 아들 은석에게 태산그룹을 물려주기 위해 타인의 희생을 죄책감없이 소비하듯이, 마루도 동생 강초코(이유비)를 위해 타인의 희생을 외면한 채 소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강마루는 '현재의' 한재희를 닮았다.
한편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서은기는 강마루를 닮아가고 있었다. 은기는 태산그룹을 비롯해 아버지 서회장(김영철)의 존재마저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사랑했던 강마루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가 아닌 가슴이, 심장이, 사랑이 말이다. 때문에 강마루는 서은기에게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다. 마치 한재희에게 모든 걸 걸었던 강마루의 모습이, 서은기에게서 오버랩된다. 그렇게 서은기는 '과거의' 강마루와 다르지만 닮았다.
그렇다면 한재희가 필요한 이유가 보다 명확해진다. 그것은 한재희의 '서은기'화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재희는 서은기와 무엇이 닮았을까. 바로 과거의 모습이다. 서은기가 강마루를 만나기 전의 모습이다. 은기는 계모 한재희에게, "한재희씨"라는 남같은 호칭을 썼고, 남자 꼬시는 데엔 전대미문의 레전드가 따로 없다는 식으로 비아냥댔다. 뿐만 아니라, 이복동생 은석에겐, "내가 왜 네 누나야?"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즉 서은기는 아버지 서회장과 한재희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고, 재희를 새엄마로, 은석을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산그룹을 차지하기 위해, 재희가 의도적으로 아버지에게 접근한 꽃뱀이라 생각했고, 때문에 매번 재희에게 위협적이고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었다. 심지어 은기는 재희에게 비서를 붙여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었다. 때문에 재희가 마루에게 몰래 건넸던 10억원이 은기에게 발각된 것이고 마루에게 또 한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밖에 없던 재희는, 은기를 향해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며 무섭게 변하기 시작했다.
한재희가 서은기에 본격적으로 발톱을 세우기 시작한 때가, 바로 마루에게 10억원을 건네려다 들킨 시점이었다. 태산그룹엔 없어도 그만인 10억원. 마루의 사랑을 배신하고, 교도소에게 5년을 썩게 만들고, 출소해선 여자 등처먹는 막가파 인생을 살고 있는 안타까운 마루에게, 어떤 식으로도 보상하고픈 재희의 마음은, 은기로 인해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재희가 은기를 이해하는 데에도 한계에 부딪혔고, 은기를 향한 미움과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가정'이란 걸 하게 된다. 서은기가 강마루를 만나지 않았다면? 마루를 만나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면? 아마도 서은기와 한재희는 태산그룹을 놓고 피터지는 싸움을 계속 했을 것이다. 태산그룹 내에선, 상대적으로 강자인 은기는 재희를 벼랑끝으로 내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것이다. 은기는 태산의 안주인이 오직 죽은 엄마의 몫이지, 다른 여자가, 재희가 머무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즉 은기에게 마루가 없었다면, 사랑이 없었다면, 은기의 미래는 현재 재희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랑했던 마루를 배신하고 아들 은석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한재희처럼, 죽은 엄마를 위해 모든 할 수 있었던 여자가 서은기였으니까. 그래서 지금의 한재희는 '과거의' 서은기인 동시에, 앞으로의 한재희는 마루를 만나기 전의 모습을 한 '미래의' 서은기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한재희는 이유없는 싸이코가 아닌 이유있는 악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태산그룹이란 같은 목적을 쫓았던 한재희와 서은기. 하지만 은기는 태산이란 '탐욕'보단 강마루라는 '사랑'이 소중함을 깨달았고, 재희와 상반된 길을 걸었다. 만약에 은기가 마루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은기는 갈수록 악녀본색을 강하게 드러내는 재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서은기는 강마루를, 강마루는 한재희를, 한재희는 서은기를 묘하게 닮았다. 20부작중 10회를 마친 드라마 '착한남자'속에 세남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가며 서로에게 거울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은 늘 한가지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선택에 따른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선택한 길이 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은 상대방을 통해 읽는다. 지금 나는 행복한 건지, 후회하고 있는 건지. 그리고 깨닫는다. 내게 어떤 선택이 필요했는지.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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