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치마'의 싱어송라이터 '조휴일'의 본명이 조휴일이란 사실을 알고 나는 그가 당장 좋아졌다. 휴일이란 이름을 가진 남자라면 적어도 '휴일'이란 단어가 연상시키는 '느림, 쉼, 낮잠, 오후만 있던 일요일' 같은 단어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단 훨씬 더 많이 생각했을 것 같아서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이구름'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아이를 좋아했다. 사진을 찍는 프랑스 아빠와 모델 출신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눈빛은 늦가을의 개암나무 빛. 이런 이름을 가진 남자아이의 사랑 이야기가 나로선 꽤나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만약 '이구름'이 나오는 소설 한 편을 쓴다면 나는 이렇게 시작할 것 같다.
"이구름? 그거 부모님이 지어주신 본명인 거야?"
"응."
"이런!"
"왜?"
"그러니까 넌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인 거잖아. 뭉게구름 같은. 안 그래?"
"그럴지도. 그런데, 그게 뭐?"
"내 이름은 김하늘이거든…."
이거, 절대, 절대로, 농담이 아니다. 영화배우 김하늘을 떠올리는 것도 곤란하다. 여자아이의 말줄임표 안에는 감탄사 같은 이런 말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봐, 구름은 절대 하늘 밖에선 살 수 없는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떨어져 살 수가 없는 존재들이야."
지금 나는 거짓말처럼 몇 초 안에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니까 검정치마의 '좋아해줘'의 가사처럼 "날 좋아해줘. 아무런 조건 없이. 네 엄마 아니 아빠보다 더. 서울 아니면 뉴욕에서도. 어제 막 찾아온 사춘기처럼…. 그래도 내가 싫어진다면, 그건 아마 너의 잘못일 거야!"라고 소리칠 수 있는 여자와 남자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속에 가장 애절한 대목은 그들이 함께 점유할 시간이 점점 사라져가는 장면이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결혼식 일주일 전에 사랑에 빠지거나, 유학이나 이민처럼 특정 공간을 완전히 떠나기 일주일 전에 누군가와 운명적으로 만나는 이야기가 많은 건 그런 시간의 긴장감 때문이다. 이때, 시간과 공간은 남자와 여자에게 다른 식으로 작동한다. 남자는 여자를 두고 떠난다. 여자를 남자와 함께 머물던 공간 안에 유기물처럼 방치한 채 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남긴 발자국들을 끌어안고 잠들어야 하는 사람에게 밤은 낮보다 더 무서운 시간인데, 그때는 눈을 감고 있어도 그의 지문이 닿은 모든 물건이 속삭이듯 말을 걸어온다.
'내 귓가에 노래를 불러 넣어줘요/다른 새소리가 들려오지 않게/유일했던 사랑을 두고 가는 내게/숨겨뒀던 손수건을 흔들어줘요//hey let your bright light shine on me/can you love me unconditionally/and sing a million lullabies on a sleepy day/hey let your sea breeze blow on me/when I am sailing internationally/and whisper all your prayers on a stormy day//그대 입안에 내 숨을 불어넣어줬죠/그 작은 심장이 내려앉을 때마다/내일이면 날 잡을 수도 없어요/홀로 남을 그대는 괜찮나요'.
조휴일이 만든 노래 중 아마도 가장 아름다울 'love shine'의 마지막 문장은 이런 것이다. "hey 눈을 붉혀선 안 돼요.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에는. 같이 늙고 싶다고 약속을 해줄게요."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이 남자의 진심은 아마도 그런 것이었을 거다. 하지만 살다 보면 그냥 알게 되는 것 중, 가장 슬픈 건 아마도 이런 것은 아닐까. 불가능한 약속을 하는 남자의 말을 믿는 척해주는 것, 슬픈 말을 하면서 웃어 버리는 것,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노랫말의 진짜 의미를 생각하며 입은 웃지만 눈은 울고 있는 것….
검정치마의 첫 번째 앨범 '201'을 듣다가, 201이 뜻하는 것이 뭔지를 검색했다. 그리고 201이 조휴일이 자란 도시인 '저지시티'(미국 뉴저지주)의 지역 번호라는 걸 알게 됐다. 저지시티가 1980년대 한국 이민자가 많이 살던 곳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1990년대에는 상대적으로 집값이 싸서 유학생이 많이 머물던 곳이란 것도. 그리고 마천루가 가득한 맨해튼의 진짜 야경을 즐기려면, 허드슨 강 너머에 있는 '저지시티' 쪽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도 다양한 사진을 통해 알았다. 매일 밤 축제가 이어지는 바라나시의 진짜 밤 풍경을 보기 위해선, 타다 만 시체가 떠다니는 갠지스 강을 건너 황량한 불가촉 천민의 섬들에서 봐야 하는 것처럼. 공연히 심란해졌다. 조금 쓸쓸한 바람이 훅,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만약 지금 내 이름을 마음대로 지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아마도 나는 '연두'라고 지었을 것이다. 봄날의 순한 연둣빛을 사랑한 여자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시적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폭풍같이 어지러운 이십대를 지나 서른 살이 되면,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 아닌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지을 수 있는 법 같은 게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만약 그렇다면 나는 스스로 '소요'란 이름을 선택한 남자를 사랑할 것 같다. '자유롭게 이리저리 천천히 걷는다'는 의미의 이 단어가 잘 어울릴 남자 말이다. 봄을 뜻하는 연두와 가을을 뜻하는 소요가 만나면 문득 그 빛깔이 더해져 풍성해질 것 같다는 건, 순전히 내 낭만적인 상상일 뿐이지만.
●Love Shine: 2011년 7월 나온 검정치마의 두 번째 앨범 'Don't You Worry Baby'에 담긴 곡이다. 이 앨범의 모든 곡 작사 작곡은 조휴일이 했고, 직접 녹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