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리아'의 한 장면. 젊은 의사 모티머(휴 댄시, 가운데)가 자신의 발명품인 전동 바이브레이터를 들고 중년 여성 환자에게 '시술'하려 하고 있다.

타니아 웩슬러 감독의 '히스테리아'(Hysteria)는 소재로만 보면 좀 민망한 내용의 영화입니다. 19세기 영국 런던의 어느 병원에서 '히스테리아'라는 마음의 병에 걸린 여성들을 치료하기 위해 '은밀한 부위'의 마사지를 해 주던 의사가 여성용 자위기구를 발명하는 이야기가 담겨있으니까요. 성행위나 폭력을 과도하게 묘사하고 있지 않은데도 이 영화는 '19금'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야한' 영화의 재미를 기대하고 '히스테리아'를 본다면 실망할 듯합니다. 에로티시즘 영화의 흥미를 안기는 작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온 몸을 가리는 100여년 전 의상들 덕분에, 문제의 그 '마사지' 장면 조차도 암시적일 뿐입니다. 더 근본적으로, 이 영화는 성(性)에 관한 영화라기 보다는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와 지위에 눈떠가던 시대를 다룬 페미니즘 영화입니다.

병원을 찾아온 상류층 여성환자들을 진료실 침대에 눕게 하고 그 마사지를 하는 장면도 그다지 낯뜨겁지 않습니다. 치료를 받는 중년 여성들의 흥분된 표정은 보는 사람을 민망하게 만들기보다는 입가에 가벼운 웃음이 번지게 합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영화에 시종일관 이어지는 고급스런 유머, 그리고 여성의 삶에 대한 성찰이 바탕에 깔린 테마가 영화를 받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로버트의 병원은 히스테리아로 고통받는 여성 환자들을 대상으로 전동 바이브레이터를 이용한 마사지 요법을 시작해 히트를 치자 벽보에 이를 크게 광고한다.

히스토리아의 전편을 관통하는 유머는 폭소짓게 하는 우스개가 아닙니다. 우리들 삶의 풍경 속에 존재하는 우스꽝스런 측면들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미소짓게 만드는 유머입니다. 유머들은 민망함을 덜어주는 일종의 완충장치 같은 역할을 합니다.

스크린 속 19세기 영국 런던의 풍경부터가 조금씩 웃음을 유발하기 시작합니다. 병원에선 세균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의사랍시고 의료 행위를 합니다. '여성전문 병원'이라는 곳도 우습지만, '히스테리아'라는 정신 질환을 성기 마사지 따위로 치료하겠다고 나서는 의사들도 '웃기는' 사람들입니다.

의학적으로 '히스테리아'란 욕구 불만 때문에 몸과 마음에 여러 가지 고통이 생기는 병이라고 합니다. 영화 속 런던 상류층 여성들이 이 병에 걸리게 된 원인 중에는 가정부처럼 부엌일만 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성적(性的) 불만족도 중요한 원인입니다. 그녀들은 의사 앞에서 이렇게 호소합니다. "황혼에 접어들었는데도, 자꾸만 남자 생각이 나네요."

'히스테리아'의 한 장면. 여성전문병원에서 새로 일하게 된 젊은 의사 모티머(휴 댄시)는 이 병원 원장의 큰딸이자 사회복지사업에 뛰어들어 사회의 낮은 곳을 보살피는 샬롯 댈림플(매기 질렌할)과 점점 교감을 나누게 된다.

묘하게 생긴 '하반신 가림막'을 쳐 놓은 병원 침대에서 의사가 향유(香油)를 적신 손으로 조심스럽게 여성 환자를 마사지하는 건 진풍경입니다. 진지한 의사의 표정과 대조적으로 얼굴에 홍조를 띤 환자가 소리까지 지르는 모습도 코미디입니다.

잘 생긴 젊은 남자의사 모티머(휴 댄시)가 로버트 댈림플의 병원에 새로 오자 중년 여성 환자들이 급증해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넘치는 환자를 치료하느라 '격무'(?)에 시달린 모티머가 탈난 손을 얼음찜질합니다. 도저히 손으로는 그 많은 환자들을 마사지해 주지 못하게 되자, 모티머는 고민 끝에 놀라운 발명품, 여성용 바이브레이터를 만듭니다. 자칫 민망함을 안길 수 있는데도 번득이는 유머 감각과 재치 덕에 쿡쿡 웃으며 보게 됩니다.

인간의 성(性)을 다룬 작품에서 유머 감각이 낯뜨거움을 완화시키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작년 가을 대학로에서 '쇼드라마'라는 장르로 공연된 '쿠킹 위드 엘비스' 라는 작품은 한 남자를 둘러싸고 연적(戀敵)이 되어버린 모녀의 적나라한 욕망을 드러낸 '19금'공연이었지만, 인생의 단면을 짚어내는 유머들이 이어지면서 우리 연극에서 맛보기 힘들었던 블랙 코미디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여성전문병원에서 새로 일하게 된 젊은 의사 모티머(휴 댄시, 오른쪽)가 병원장인 로버트 댈림플(조나단 프라이스, 가운데)의 소개로 작은 딸 에밀리 댈림플(펠리시티 존스)과 인사하고 있다.

양영순의 성인용 만화를 연극으로 옮겨 1999년 공연된 연극 '누들 누드'에서도 성(性)에 관한 판타지의 나열로 관객들 낯이 뜨거워지려고 할 때면 어김없이 무대에 펼쳐진 신선한 개그들이 '유쾌한 성적 농담'이라는 연극 분위기를 다잡았습니다.

결국 '히스테리아'는 겉으로는 여성 성기 마사지라는 매우 자극적인 소재를 끌어들였지만 실상은 19세기 유럽에서 꿈틀댔던 여성들의 자유 의지와 삶에 대한 거침없는 욕망의 분출을 그린 작품인 셈입니다. 당시의 '히스테리아'란 개인의 질병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섹스 토이까지 발명하게 된 의사의 이야기와 별도로 진행되는 또 한 축의 스토리가 이 영화의 테마를 분명히 합니다. 병원 원장의 두 딸 이야기입니다. 큰딸 샬롯 댈림플(매기 질렌할)은 감정을 과도하게 표출하는 히스테리아 환자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불만은 고작 남자 문제같은 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녀는 '여성들을 부엌과 양조실에 묶어 두려는'세상에 맞서며 여성의 지위 향상과 남녀평등교육, 참정권 쟁취 등을 위해 투쟁하는 진보적 여성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의사 모티머가 처음엔 과학저술가인 원장의 둘째딸 에밀리 댈림플(펠리시티 존스)에 끌렸다가 차츰 샬롯과 교감하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히스테리아'는 첫머리에서 "이 영화는 사실을 근거로 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신경질적인 히스테리를 치료하려던 의사가 손이 너무 아파 여성용 섹스 토이를 발명했다는 농담같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니 놀랍습니다.
자칫 심각하게 빠질 수 있는 테마를 코미디 속에 녹여내는 열린 상상력, 진지한 이야기에 유머와 재치를 섞어 유쾌하게 풀어내는데 능한 서양 화법의 장점이 느껴집니다. 우리 영화도 참고할만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