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36)은 일본 프로야구 생활 8년을 마치고 올해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왔다.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뛰어난 타격 실력을 보이며 팀의 정규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그가 이번 시즌 꾸준히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꼼꼼한 배트 선택과 관리를 들 수 있다. 이승엽은 "장비 관리는 몸 관리만큼 중요하다"면서 "배트 상태를 최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에어컨 바람도 맞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승엽은 한 번 써서 타격감이 좋지 않으면 그 배트를 다시 쓰지 않는다. 경기마다 들고 나오는 배트도 매번 바뀐다. 이승엽은 아오다모(일본 홋카이도산 물푸레나무)로 만든 배트를 가장 좋아하는데, 올해는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진은 이승엽이 지난달 26일 대구 KIA전에 물푸레나무로 만든 배트를 들고 나온 모습.

타자들은 방망이에 민감하다. 자신이 원하는 제조회사에 규격(길이·둘레 등)의 범위 안에서 맞춤 제작을 한다. 타격 1위 김태균(30·한화)과 홈런·타점·장타율 1위 박병호(26·넥센)도 '손맛'이 좋은 배트를 주문해 사용한다. 아무리 강타자라도 원하는 배트를 구하지 못하면 타격에 어려움을 겪고, 배트와 관련된 징크스에 시달리기도 한다.

◇최적의 배트를 찾아라

국내 선수들이 쓰는 방망이의 길이는 보통 33~34인치(83∼86㎝) 안팎이다. '42인치(약 106.7㎝) 이하'인 규정보다 많이 짧다. 배트의 길이가 길수록 스윙 속도가 줄어들고, 몸쪽으로 들어오는 공에도 민첩하게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병호, 이승엽, 김태균도 34인치(약 86.4㎝)의 배트를 사용하고 있다.

무게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 메이저리그 통산 714개의 홈런을 때린 베이브 루스는 데뷔 초 1.5㎏짜리 배트를 사용했다. 1927년 시즌 60개의 홈런을 쳤을 때도 그는 1.1㎏짜리 배트를 사용했다. 당시에는 배트를 무겁게 만들기 위해서 쇠못을 박아넣는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장타를 날리기 위해서는 배트 무게만큼이나 배트가 돌아가는 속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배트의 무게는 점차 줄었다.

김태균은 시즌 초에 1㎏짜리 배트를 쓰다가 시즌 중반부터는 920g짜리 배트를 사용했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매주 6경기씩을 소화하면서 점차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연습 땐 1㎏짜리 배트를 그대로 썼다. 그는 "무거운 배트로 연습하면 경기 전에 타격 밸런스를 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박병호도 890g짜리 배트로 시즌을 시작했다가 8월부터는 체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870g짜리를 사용했다. 이승엽의 경우 일본 오릭스에서 뛰었던 작년에 이어 올해도 900∼910g짜리 배트를 시즌 내내 썼다.

◇재질과 브랜드

배트는 하나의 단일한 목재로 만들어져야 한다. 반발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 종류의 목재를 이어 붙인 접착 방망이는 금지다. 배트의 최대 지름은 2.75인치(약 7㎝)를 넘지 않아야 한다.

배트의 재료로는 단풍나무와 물푸레나무가 대표적이다. 김태균과 박병호가 선호하는 단풍나무 배트는 강도와 내구성이 높은 편이다. 밀어내는 힘이 강해 장타를 만들어내는 데 유리하다. 이승엽이 선호하는 물푸레나무는 탄력이 좋아 공을 때릴 때 충격이 작고 느낌이 부드럽다고 한다.

유명 선수들은 제조회사의 배트 협찬을 받는다. 이승엽은 200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부터 미즈노와 계약을 맺고 제품을 지원받고 있다. 일본 시절엔 방망이를 써주는 대가로 일정 금액의 돈까지 받았다. 올해부터는 삼성구단의 방침에 따라 장비만 받는다. 협찬사가 없는 박병호의 경우 미국 제품을 직접 산다. 시즌 초엔 주문한 배트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동료의 방망이를 빌려 쓰기도 했다.

◇방망이에 얽힌 징크스

선수들은 자신의 분신과 같은 배트를 소중하게 관리한다. 쓰지 않을 때 늘 세워서 보관하는 것은 기본이다. 눕혀 놓으면 미세하게나마 배트가 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가 온 뒤에는 배트를 햇볕에 내놓고 잘 말린다. 메이저리그에서 12년간 뛰며 2606안타를 친 스즈키 이치로(뉴욕 양키스)의 경우 방망이를 특수 제작한 알루미늄 케이스에 넣어 습기와 열기로부터 보호한다.

배트와 관련한 징크스도 선수들을 따라다닌다. 이승엽은 처음 잡아봤을 때 느낌이 좋았던 배트도 경기 때 써보고 찜찜한 기분이 들면 더는 쓰지 않는다. 김태균은 다른 선수에게 배트를 주고 나면 그 경기에서 타격감이 떨어지는 징크스가 있다고 했다. 강민호(롯데), 박석민(삼성), 김현수(두산) 등 타격이 뛰어난 선수들이 김태균의 방망이를 자주 탐낸다. 김태균은 "징크스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후배 선수들이 찾아와서 부탁하면 거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