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골목길 상가 건물 2층에 죽 전문점이 문을 열었다. 하루에 죽을 열 그릇 정도 팔던 이 가게가 10년 만에 전국에 1400여개 가맹점을 가진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 '본 아이에프'로 성장했다. 본죽 1호점을 지금 덩치로 키워낸 김철호(49)·최복이(47) 공동 대표 부부가 "시작부터 하나하나 가꾸고 키워가는 재미를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며 본지와 여성가족부가 펼치는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에 참여했다.
부부는 대학 졸업반이던 1986년 충남 서천의 작은 예식장에서 결혼했다. 신랑·신부 둘 다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동네 유지가 주례를 섰다. 신랑 어머니가 "그래도 이름 있는 사람이 주례를 서야 좋다"면서 어렵게 수소문한 사람이었다.
남편 김 대표는 "그날 처음 본 분이다 보니 주례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겉보기에 멋진 사람이 주례를 서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바로 허례허식 같아요."
부인 최 대표는 "오히려 그때 학생이던 친구들이 축의금 대신 주고 간 오리 모양 장식품과 축하 카드가 더 소중하다"고 했다. "진짜 기억에 남는 것은 두 사람을 진심으로 축하해준 사람들이지 누가 주례를 섰는지, 얼마나 꽃을 많이 했는지 같은 외적인 것들이 아니더라고요."
부부는 슬하에 세 딸을 뒀다. 큰딸(25)만 공부를 마치고 아래로 둘은 아직 학생이다. 최근 큰딸이 부모에게 "소박하게 결혼식 올리고 싶다"고 먼저 말했다. '모르는 하객들이 잔뜩 와 있는 앞에서 화려하게 결혼식 하면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이유였다.
남편 김 대표는 "아마 우리가 사업을 하니까 자기 결혼식 할 때 청첩장 잔뜩 돌릴까 봐 불안했던 모양"이라면서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이 '의무 방어전'처럼 돼서 '청첩장 받았으니까 간다' '저 사람이 내 자식 결혼에 와줬으니까 나도 가준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업종 특성상 본아이에프 가맹점 사장 중에는 결혼 적령기 자녀를 둔 혼주 세대가 많다. 김 대표 부부가 작은 결혼식을 약속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평소 가깝게 지내던 가맹점 사장 3명이 "나도 함께 약속하겠다"고 나섰다. 김정순(59) 본죽 아크로텔점 사장, 정난미(57) 본죽 파리공원점 사장, 이경순(54) 본죽 양천구청점 사장이 그들이다. 세 사람은 2003~2004년 서울 양천구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점을 열고 9~10년째 영업을 하고 있다.
"우리 셋 다 20~30대 자녀가 있어요. 이번 캠페인 이야기를 듣고 '내 숙원 사업이 해결되는구나' 싶었어요. 우리 결혼 문화 정말 문제가 많다고 늘 생각했거든요. 저 혼자라면 몰라도 특히 절친한 동료와 함께 약속하면 나중에 사돈댁에서 반대해도 작은 결혼식을 밀어붙일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요."(정난미 사장)
"아이들이 자주 '엄마, 이제 덜 힘든 일 하면 안 되느냐'며 걱정해요. 그래도 힘닿는 데까지 운영해서 아이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주고 싶어요. 애써 번 돈을 허례허식에 낭비하고 싶지 않고, 화려하게 식 올리는 게 아이들에게 장기적으로 꼭 좋을 것 같지 않아요."(김정순 사장)
이경순 사장은 "결혼식이 당사자를 축복하는 자리가 아니고 부조금 냈으니까 밥 먹는 자리가 되어버린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주위 분들에게 '결혼식에는 정말 친한 분들만 모시는 게 좋지 않으냐'고 말을 꺼내면 다들 '당신 딸 결혼시킬 때나 그렇게 하라'고 해요. 하지만 소중한 시간을 들여서 진심으로 축하해주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요."
신산철 생활개혁실천협의회 사무총장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일수록 땀의 가치를 잘 알고 있어 자식들에게 호화로운 결혼식을 시키기보다 자기 힘으로 출발하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한다"면서 "본죽에서 시작된 '작은 결혼식' 릴레이가 더 큰 기업의 오너와 경영인들에게 확산돼야 고비용 결혼 문화가 바뀔 수 있다"고 했다.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 참여하려면 이메일로 간단한 사연과 연락처를 보내주세요. 약속 증서를 댁으로 보내드립니다.
▲이메일 보낼 곳: life21@life21.or.kr ▲문의: (02)793-7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