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쪽 분량의 영문 소설 창작, 전래동화 스페인어 번역 출간…. 어른도 쉬이 해내기 어려운 일을 척척 해낸 초·중학생이 있어 화제다. 김나영(서울 원촌초등 6년)양과 고현조·김수연양, 남지혁군(이상 대원국제중 3년)이 그들. 나영양은 최근 영문 판타지 소설 '캣(CAT)'(평민사)을 펴냈다. 이 책은 한 어린이영어도서관에서 '렉사일(Lexile)지수(영어 읽기능력 측정지수의 일종) 930~1070' 판정을 받았다. 대원국제중 3인방은 '의좋은 형제' '해와 달이 된 오누이' '호랑이와 곶감'을 스페인어로 번역, 스페인 현지 도서관 기증을 추진 중이다.
영문 판타지 소설 '캣' 출간 _ 서울 원촌초등 6 김나영
나영양은 초등 3학년 때부터 매주 A4용지 1매 분량의 짧은 이야기를 쓰며 작문 실력을 키웠다. 2학년 1학기 때부터 1년 6개월가량 호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 영작(英作)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이후 영어로 된 동화와 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특히 좋아한 분야는 '해리 포터'(조앤 K.롤링 글)나 '퍼시 잭슨'(릭 라이어던 글) 시리즈 같은 판타지 장르. "원문 소설을 읽다 보니 글을 쓰려면 다양한 어휘부터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단어장을 달달 외우는 건 지겹더라고요. 궁리 끝에 생각해낸 방법이 영단어를 활용해 직접 글을 써보는 거였죠."
요즘도 그는 주중엔 토플(TOEFL)·토익(TOEIC) 단어장으로 어휘를 익히고 주말엔 그 중 10개 안팎을 골라 단편소설을 쓴다. 아이디어는 대부분 주변 사물에서 얻는다. 지난 여름엔 어머니의 선글라스에서 힌트를 얻어 '선글라스 제국은 어떻게 멸망했나?'(How the Sunglasses Empire Died?)를 완성했다. 소설 '더 리틀 라이딩 후드'(The Little Red Riding Hood, 번역서 제목 '빨간 망토 소녀')를 읽은 후엔 내용을 재구성해 자신만의 이야기로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번 소설은 지난해 초부터 6개월에 걸쳐 작업한 결과물이다. 인류 탄생 이전 지구를 지배했던 '가이안 고양이'들의 전쟁, 그리고 21세기에 다시 등장한 가이안 고양이 '세멘'과 소녀 '헬렌'의 모험담이 주된 내용. 이제 겨우 열세 살인 나영양이 영어 장편소설을 쓸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어머니 송은규씨는 "한국어 책과 영어 책의 독서 수준을 비슷하게 유지해 온 게 큰 도움이 됐다"며 "같은 내용의 책도 한국어로 읽은 후 영어로 다시 읽으면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전체적 맥락에서 추측할 수 있어 어휘력은 물론, 읽기·쓰기 능력 향상에도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나영양의 꿈은 '한국적 개성을 지닌 세계적 작가'가 되는 것이다. "영문학적 지식에 우리나라 신화나 전설을 접목, '한국판 나비부인'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세계 각국 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작가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전래동화' 스페인어 번역·기부_ 대원국제중 3 고현조·김수연·남지혁
고현조·김수연양과 남지혁군은 모두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 전래동화 번역 작업이 시작된 건 지난해 겨울. '우리가 3년간 공부한 언어로 졸업 전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뭉쳤다. 대원국제중은 재학생이 학년별로 1년간 읽은 책의 분량에 따라 일정액을 기부하는 일명 '도서 기부 프로그램'을 축제 때마다 운영 중이다. 이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래동화를 스페인어판으로 제작, 기부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올 1학기 초부터 본격적 작업에 들어갔다. (초등 1년생 동생이 있는 수연양은 어린이 눈높이에 최대한 맞는 작품을 찾기 위해 동생에게 여러 종류의 책을 보여준 후 가장 반응이 좋은 걸 택하기도 했다.)
번역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의 좋다' '곶감'처럼 우리말은 존재하지만 스페인어엔 없는 의성어·의태어 등을 적절한 단어로 표현하는 작업이었다. '해와 달이 된…'을 'El Sol y La Luna'란 제목의 스페인어 버전으로 번역한 지혁군은 "호랑이가 오누이를 찾아 집안 곳곳을 뛰어다니는 장면을 한국어로 옮기는 일이 특히 난감했다"고 말했다. "서까래·기둥·마루 등 한옥 구조에 관한 용어가 많아 애를 먹었어요. 스페인 어린이들이 최대한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단어를 찾는 한편, 삽화가 선생님께 각별히 잘 표현해달라고 '특별 주문'을 넣기도 했죠."
책이 완성된 건 지난달 말. 세 학생은 학교 측 도움으로 주한스페인대사관에 "스페인 공공 도서관과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책을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긍정적 답변을 얻었다. 이에 따라 작품별로 50권씩 총 150권의 책은 이르면 다음 달 중 주한스페인대사관에 전해질 예정이다. 현조양은 "고교 진학 후엔 중국어·프랑스어·독일어·일본어 등 다양한 언어를 전공하는 친구들과 힘을 합쳐 (연합)동아리 차원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다시 한 번 진행해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