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디즘이란 용어를 낳은 프랑스 작가 마르키 드 사드(1740∼1814)의 소설 '소돔의 120일'(동서문화사·사진)에 대해 배포 중지와 즉시 수거, 폐기 결정이 내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간행물윤리위원회(이하 간윤) 장택환 사무국장은 "근친상간, 수간(獸姦), 시간(屍姦) 등 이 작품의 음란성과 선정성이 도를 넘어섰다고 심의위원들이 판단했다"면서 "이례적으로 2회에 걸친 심층 회의 끝에 유해 간행물 판정을 내렸다"고 18일 밝혔다.
유해 간행물 판정은 국가의 안전·공공질서를 뚜렷이 해치거나 음란한 내용의 노골적 묘사로 사회의 건전한 성도덕을 해친 것으로 판단될 때 내려지는 조치. 19세 미만 미성년자 독자에게 유통을 금지하는 '청소년 유해 간행물' 판정보다 한 단계 높은 제재 조치로 출판사는 즉시 책을 수거해 폐기 처분해야 한다. 4년 전인 2008년 공포소설 '잘린 머리의 속삭임'이 반인륜적이라는 이유로 같은 판정을 받기는 했지만 만화나 전자출판물, 해외 원서가 아닌 일반도서에 유해 간행물 판정이 내려지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소돔의 120일'이 국내에서 유해 간행물 판정을 받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지난 2000년 8월 고도출판사에서 나온 첫 완역판 '소돔 120일'도 같은 이유로 수거·폐기 처분받아 서점에서 사라졌다. 이 저작물은 작가 사후 5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된 상태로 동서문화사판은 지난달 출간됐다.
출판사는 재심을 청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고정일 동서문화사 대표는 "시몬느 드 보봐르가 사드를 일컬어 '고결한 정신'이라 표현했듯 사드의 이 작품은 인간이 얼마나 극악해질 수 있는가를 심층적으로 묘파한 고전"이라면서 "심의위원들이 정말로 이 책을 끝까지 읽고 판단을 내린 것인지 의문"이라고 반발했다. 고 대표는 "1948년 일본에서도 같은 이유로 재판이 열렸지만 무죄판결을 받았다"면서 "재심을 청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끝까지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말했다.
'소돔의 120일'(1804)은 인간의 악과 광기를 다룬 작품으로 프랑스 루이 14세 치하에서 권력자들이 젊은 남녀 노예를 이끌고 120일간 벌인 향락을 소재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