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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열대어'라니. 이토록 뜨거운 영화를 만들어 놓고 '차가운 열대어'란 제목을 붙인 소노 시온 감독은 불친절하다. 동시대의 다른 일본 감독들이 '위안'이나 '치유'를 운운하며 예쁘고 달콤한 과자 같은 영화를 선보일 때 그는 살인과 섹스로 폭주하는 작품을 내놨다. 개운치 않은 단맛에 혀가 마비될 때쯤 나타난 소노 감독의 광폭한 작품이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다.

작은 열대어 상점을 운영하는 샤모토(후키코시 미쓰루)는 무기력하고 소심하다. 그의 두 번째 아내 타에코(가쿠라자카 메구미)는 순종적으로 보이지만 가정에 불만을 갖고 있고, 샤모토의 딸은 새어머니를 구타하며 부모에게 반항한다.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린 딸을 거대 열대어 체인점을 운영하는 무라타(덴덴)가 구해주고, 그는 친절을 가장한 채 샤모토의 가정에 서서히 침입한다. 돈을 위해 살인을 하는 무라타 부부의 범행 현장을 목격한 샤모토는 그들과 공범이 되면서 스스로 변해간다. 극단적인 설정 때문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는 1993년 일본에서 일어난 독극물 연쇄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탐욕으로 뒤틀린 세상에서 샤모토처럼 야성을 잃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에 꾹꾹 짓눌린 채 제대로 숨도 못 쉰다. 그는 결국 세상에 의지와 희망을 내주고 분노와 폭력을 받아들인다.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지 못할 바에 차라리 괴물이 돼버리는 것이다. 무라타의 열대어 가게에서 일하는 소녀는 악어에게 먹이를 주면서 "회를 주면 야생성이 드러나서 냉동 생선을 먹인다"고 했다. 냉동 생선만 먹고 살아온 샤모토에게 무라타 부부는 회를 던져주며 그의 본성을 일깨운 셈이다.

화면에는 피와 살이 튀지만 소노 감독의 시선은 시종일관 차갑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디까지 치닫는지 한번 지켜보자'는 듯 무심하다. 그럼에도 영화의 온도는 꽤나 높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가 안락하게만 느껴지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뜨거움에 데일지도 모른다.

20일 개봉. 19세 이상 관람가.

[이것이 포인트!]

#대사
  "지구는 둥글고 푸르다고 생각해? 내 생각에 그건 그냥 바위 덩어리야. 추하게 생긴 바위 덩어리! 부드럽고 아름다운 행성은 없어."(살인 현장을 보고 충격받은 샤모토에게 무라타가 하는 말)

#장면
  살인을 저지르고 집에 온 샤모토가 아내와 딸에게 폭언과 폭력을 가한다. 괴물이 돼버리는 순간.

#이런 분들 보세요
  '아프니까 청춘'이나 '나는 너를 응원한다' 같은 위로에 공감할 수 없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