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10시 서울 중구 A호텔 앞. 곳곳에 흰 국화꽃과 관이 놓여있고 대형 스피커 2대에선 음산한 장송곡이 울려 퍼졌다. 지나가던 외국인들이 이 광경에 놀라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같은 시각 호텔 프런트엔 중국어·일본어·영어 등 각국 언어로 항의 전화가 걸려왔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방에서 쉴 수도, 잘 수도 없다"는 것이다. 담당 직원은 "밤새 벌어지는 시위 때문에 그러니 죄송하다"며 "바로 방을 바꿔드리겠다"고 말했다.
A호텔 앞에선 이 호텔의 모(母)그룹에 대한 규탄 집회가 넉 달째 열리고 있다. 한 시민단체 소속 시위대 100여명은 호텔 앞에 모기장을 치고 오후 무렵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시위했다. 지난달부턴 24시간 이어지는 '1박 2일 집회'까지 생겨났다.
소음이 얼마나 큰지 알아보려고 15일 0시 30분쯤 이 호텔 7층 객실에 들어가 보았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창 쪽에서 곡소리가 들려왔다. "북망산이 멀다더니" 하는 가사까지 들렸다. 통화를 해보니 상대방이 "이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 정도였다. TV 소리를 귀가 아파 오는 크기인 '19'까지 올려야 곡소리가 겨우 들리지 않았다. 이날 호텔 입구에서 경찰이 측정한 시위대의 소음 크기는 69dB(데시벨). 경찰은 "70dB 넘기면 법에 걸리는 것 (시위대도) 잘 아니까 딱 69dB에 맞춰 밤새 틀어놓는다"고 말했다. 70dB은 전속력으로 지나가는 트럭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소음 수준이다.
집회 및 시위에서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내·외국인이 두루 찾는 국내 특급 호텔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 호텔은 집회·시위 금지 장소에 포함되지 않는다. 현행법이 공관·외교 기관만 금지 장소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0년부터는 야간 집회·시위까지 허용됐다. A호텔 관계자는 "하루는 객실이 거의 다 찼는데 일본인 단체 관광객 15명이 한꺼번에 방을 바꿔 달라고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한국으로 신혼여행을 온 대만인 우위엔홍(34)씨는 A호텔에 묵다가 '소음' 때문에 첫날부터 호텔을 바꿨다. A호텔 관계자는 "실제 방을 바꾸거나 환불해달라는 요청이 하루 10건 이상 들어온다"고 말했다. A호텔은 지난달 13일 시위 단체를 업무 방해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시위대의 단골 집회 장소인 서울광장 인근의 B호텔도 사정이 비슷하다. B호텔은 소음을 줄이려고 객실마다 귀마개를 제공하고 있으며, 2010년 11월엔 호텔 전 객실에 이중창을 달았다.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날이면 호텔은 비상이 걸린다. 호텔은 '시위가 있어 오늘 객실이 시끄러울 수 있으니 양해 부탁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안내 카드를 방마다 놓는다. B호텔 관계자는 "대규모 야간 집회가 있는 날엔 객실 민원이 150건 넘게 들어오고 투숙객 40%가량이 '왜 미리 말을 해주지 않았느냐'며 따진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호텔을 무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지난 5월 택시 파업 당시 시위대는 B호텔 화장실을 '공중화장실'처럼 사용했다.
선진국은 집회·시위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시위대가 내는 소음이 기준치를 넘어서면 경찰은 그 즉시 집회를 해산시킨다. 캘리포니아주 건강안전법(California Health and Safety Code) 24조는 호텔·모텔을 주택가와 같은 기준인 '반(半)주거 공간'으로 지정해 최고 45dB까지만 소음을 허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