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현 대중문화부방송·음악팀장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혈 팬을 자처하며 요즘 국내에서도 눈길을 끌고 있는 미국 여가수 케이티 페리(Perry)는 단 세 장의 정규 앨범을 통해 팝계의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거물(巨物)이다. 2010년 발매된 '틴에이지 드림(Teenage Dream)'에서는 5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1987년 앨범 '배드(Bad)' 이후 23년 만이다. 페리는 전 세계적으로 1100만장의 음반을 판매했으며, 지난해엔 콘서트를 통해서만 60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그의 유년 시절과 현재 음악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파트 오브 미(Part of Me)'는 미국 전역의 대형극장에서 지난 7월 개봉해 뜨거운 호응을 끌어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페리만의 전복(顚覆)적인 이미지 전략이 있다. 그는 여느 여가수들처럼 반라(半裸)의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관능미를 발산하기도 하지만 종종 파격적인 차림새와 재치있는 말솜씨를 앞세워 대중의 관성적인 기대를 배반한다. 이를테면 커다란 뿔테 안경과 치아 교정틀을 착용한 ‘너드(nerd·얼간이) 여고생’ 모습으로 공연에 나타나거나 콧수염을 붙인 채 남장(男裝)을 하고 TV 시트콤에서 코믹하고 과장된 연기를 선보이는 식이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 다른 대형 여가수들이 성적(性的) 매력에 집착하는 사이 그는 자신을 마음껏 일그러뜨리며 대중과 더 가깝게 호흡하는 스타로 거듭났다. 이런 그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만화책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명랑 팝 캐릭터’라고 했다. 역발상이 일궈낸 결실이다.

미국 대형음반사와 전속계약까지 체결한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최근 몇 년 사이 확산 일로에 있던 케이팝(K-Pop) 가수들의 전형성(典型性)을 깼다는 점에서 페리의 성공을 닮아 있다. 싸이는 한국에서 늘 이런 파격적인 ‘B급 정서’의 음악을 해왔지만 SM·YG·JYP 엔터테인먼트 등 대형기획사들이 앞장선 케이팝 한류(韓流)에 익숙해진 외국인들에게 그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선글라스를 쓴 통통하고 얼굴도 넓적한 동양인이 펄쩍펄쩍 뛰면서 우스꽝스럽게 말춤을 추는 모습은 케이팝의 못 보던 얼굴이다. 페리가 싸이에게 반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희소식에도 케이팝의 미래에 대해 우려가 앞서는 건 왜일까? ‘강남스타일’의 돌발적 히트를 제외하면 여전히 케이팝은 아이돌 그룹 일색(一色)이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판박이 같은 모습의 아이돌 그룹은 해외 팬들에게 날이 갈수록 식상한 이미지로 소비될 것이다. 변화가 필요하지만 아직도 한국 가요계는 누가 누군지 구별조차 할 수 없는 아이돌 그룹만 매달 3~4팀씩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다른 스타일의 가수들은 아이돌 그룹의 위세에 눌려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현재 한국의 온·오프라인 인기가요 차트는 숱한 아이돌 그룹과 싸이가 양분(兩分)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하나의 싸이를 기대하기에는 척박한 환경이다. 페리처럼 온몸을 던져 모험에 나서는 스타, 그리고 이에 화답하는 대중의 환호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