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철·오원춘·김점덕·고종석. '포르노광(狂)'으로 지난 몇년 동안 우리 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은 흉악범들의 목록이다. 희대의 흉악범들이 범행에 앞서 포르노를 봤다는 사실에 경찰청은 지난 3일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단속하는 '아동포르노대책팀'을 설치한다고 밝혔다. 본지 취재팀이 이날 밤 11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인터넷상에서 44개의 파일 공유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총 3155개의 포르노가 새로 올라왔다. 한 사이트에 올라온 93개의 포르노 중에는 성폭행을 묘사하는 포르노 5개와 아동 포르노 2개 등이 포함돼 있었다. 상황이 이렇지만 한국에서는 선진국에서 강력하게 규제하는 아동 포르노, 강간 포르노 등에 대해 규제가 느슨하다는 지적이 많다.
◇"선진국처럼 아동 포르노 유통시 신고 의무화해야"
미국에 본부를 둔 국제실종착취아동센터(ICMEC)는 2010년 전 세계 196개국의 아동 포르노 규제 실태를 점검해 미국·호주·프랑스 등 8개국을 아동 포르노에 대해 가장 철저하게 규제하는 나라로 선정했다. 이 국가들의 공통점은 파일 공유 사이트(P2P)나 웹하드업체 등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가 해당 사이트에 아동 포르노가 유통되면 경찰에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독일 등 12개국은 법률은 없지만 실질적으로 인터넷에 아동 포르노가 유출되면 수사 당국에 곧바로 신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반면 한국에서는 인터넷에 아동 포르노가 유출되더라도 신고할 의무가 누구에게도 없다. 한국은 ICMEC가 실시한 전 세계 아동 포르노 규제 실태 점검에서 멕시코·슬로바키아 등 25개국과 같은 등급에 속해 있었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김종갑 소장은 "최소한 아동 포르노에 대해서만은 선진국처럼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가 법적 책임을 감수할 수밖에 없더라도 신고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솜방망이, 선진국은 쇠방망이 처벌
해외 선진국에서는 아동 포르노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는 우리와 달리 '쇠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다. 작년 11월 미국 플로리다주(州) 법원은 인터넷에서 아동 포르노 사진과 동영상을 내려받아 저장한 혐의로 기소된 대니얼 빌카(27)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빌카가 소지하고 있던 아동 포르노 454점에 대해 한 건당 징역 5년형으로 계산했다.
2004년 9월 아동 포르노에 대해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펼친 호주 경찰은 180여명을 적발했고, 이 중 50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6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프랑스는 2010년 4월 프랑스군(軍) 5성 장군 레이먼드 게르마노스(71) 원수에게 아동 포르노 소지죄로 집행유예 10월을 선고하고 '레지옹 도뇌르' '오더 오브 메리트' 등 훈장까지 박탈했다.
반면 한국은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아동 포르노 소지자를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명시한 게 전부다. 2008년 제정된 법마저도 지난 3일 수원지검이 아동 포르노 유포자 3명을 처음으로 구속하고 57명을 불구속 기소한 게 처음이었다. 4년 동안 사문화됐던 법이 고종석 사건 이후에야 처음으로 작동한 것이다.
◇유명무실한 법, 수많은 '김본좌'들은 비웃는다
지난 2006년 우리나라에 퍼진 포르노의 70% 이상을 혼자서 유통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김본좌'는 경찰에 적발되고 2007년 7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게 전부였다. 김본좌처럼 대량으로 인터넷에 포르노를 유통해 돈을 버는 이른바 '헤비업로더'들을 잡을 수 있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음란물 유통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만 부과하고 있다. 인터넷 파일 공유 사이트, 웹하드 사이트 등에서 포르노를 대량으로 올려 매달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버는 헤비업로더들이 현행법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또한 서버를 해외에 두고 활동하는 헤비업로더들에 대해 수사기관은 추적이 어렵다는 이유로 포르노 범람을 수수방관해왔다. 최근 잇달아 포르노가 결부된 흉악 범죄가 벌어지자 법무부는 오는 12월 5일 출범할 예정인 '인터넷상 아동 성범죄 해결을 위한 국제 연대'에 가입하기로 했다고 지난 3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