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 자발적으로 '백석에 미친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이한배(52)씨는 현재 생수회사 지역 총판 대표이지만 5개월 전까지 헌책방 주인이었다. 지난 4월 '갈매나무'라는 새 간판을 내걸고 그 헌책방을 인수한 사람이 김중일(52)씨다. '갈매나무'는 백석 시 '남신의주…'의 마지막 행에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로 등장하는 활엽수다. 백석 마니아인 그는 원래 직장에서 20년 넘게 재무·회계 업무를 보다 이씨의 헌책방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예 인생 후반을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이미 10년 넘게 주인과 헌책방 단골손님으로 신뢰를 쌓은 사이였다.

여기에 이 지역에서 선인장 농사를 짓는 김복현(44)씨가 가세했다. "백석 시만 읽으면 가슴이 뛴다"는 그들이었다. "백석 책을 내자"고 의기투합했지만 문제는 자금. 여기에 천안에서 식당으로 자수성가한 이씨의 후배 이은상(45)씨가 쾌척을 결심한다. 이한배씨와는 친동기간처럼 지내온 고향 후배였다. 그는 "나는 백석은 잘 모르지만 형님이 좋아하신다면 기꺼이 그 비용을 대겠다"고 했다.

전광석화처럼 일은 진행됐다. 천안의 '백석교(敎) 신도'들은 자료에 관한 한 국내 최고로 꼽히는 송준씨를 수소문했고, 부산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를 4월에 찾아냈다. 대장암 수술을 막 마친 상태였다. 이들은 송씨의 열정을 되살렸고 전기 출간에 의기투합했다. 출판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는 아마추어지만 새로 출판사 등록을 했다. 이름은 '흰 당나귀'.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가져온 이름이었고, 천안시 '백석'동에 사무실을 차렸다. 우연이겠지만 이 책을 찍기 위해 찾아간 인쇄소는 일산 '백석'역 3번 출구 앞에 있었다. 이들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우연 아니냐"고 했다.

송씨의 퇴원은 지난달 30일이었고 책 출간은 5일이었다. "의식적으로 백석과 멀리 있고자 했던 내게 이런 기회가 찾아오다니 정말 백석은 내게 하나의 숙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책과 자료들이 천재 시인 백석을 공부하는 연구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더 바랄 일이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