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전생에 사막의 들쥐인 줄 알았다. 스물 몇 살 때인가 처음 가 본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알 수 없는 편안함, 언젠가 와봤던 것 같은 익숙함, 황금빛 모래와 쏟아지는 별들의 애틋한 아름다움. 이유는 알지 못한 채 슬픔을 머금은 사막의 아름다움에 단박 난 젖어들었다. 나는 그저 내 전생과 관련된 고향 이전의 고향을 생각했다. 그래서 때때로 들쥐가 되어 별이 반짝이는 사막을 헤매고 있는 나를 상상하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그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니게 됐을 때 다시 사하라를 찾았다. 아이들과 사막 한가운데서 텐트를 치고 누운 채 별들을 보았다. 작고 예쁜 사막여우도 보았다. 사막의 밤바람에 살랑거리는 아이들의 머플러도 보았다. 수많은 별 중 유독 반짝이는 어느 별을 보면서 오래전에 알았던 한 작은 별에 관한 기억이 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불현듯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혹성 B612호.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혹성의 이름이다. 잃어버렸던, 잊고 있었던 인간다움의 가치를 불러일으켜준 불후의 진실들이 떠올랐다. 연약하고 순결한 어린왕자와 해후한 것이다.
모래와 바람과 별이 있다면 그곳은 어린왕자의 영토다. 사막에 누워있는 나에게 지구 밖 별들의 동네에서 바람의 발자국을 남기며 어린왕자는 다시 찾아왔다. 여전히 그는 황금빛 머리카락에 키도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내가 중학생 시절 처음 알았을 적엔 지구별에서의 슬픈 이별을 이해 못 했다. 어린왕자는 정말 죽은 건지, 장미꽃을 돌보러 자기 별로 돌아간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러던 그가 우연히 다시 내 마음속으로 찾아왔다. 그러고는 이 황량한 지구에서 목말라 하던 나에게 사막 어딘가에 숨어 있는 우물에서 녹슨 도르래로 신선한 샘물을 길어 내게 마시게 했다. 갈증이 사라졌다. 이제는 알 것 같다. 한 조각 구름이 사라졌다가 다시 피어나는 것처럼, 어린 왕자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것이었다고. 화엄경 속 선재동자의 만행(卍行)이 어린왕자의 지구별 여행과 겹쳐졌다. 아직도 조금은 슬픈 듯 보이지만 여전히 아름답고도 순결한 영혼과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어린왕자와의 지난 추억을 새록새록 되새김질했다. 이제 그는 언제나 나와 함께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린왕자를 처음 만났을 땐 나 역시 어렸다. 그가 말했던 외로움, 쓸쓸함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어린왕자의 고독은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어린왕자보다 불과 조금 더 큰 그의 작은 별에선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만이 고독한 삶을 견디는 유일한 위안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떤 날은 하루 동안에만 무려 마흔세 번이나 의자를 조금씩 옮겨가며 해가 지는 걸 봐야 할 만큼 쓸쓸했었고. 얼마나 외로웠을까….
고백할 것이 있다. 애석하게도 난 눈뜬장님이다. 어린왕자의 아저씨(생텍쥐페리)가 그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은, 설명이 없다면 나 역시 "이건 모자야!" 하며 아직도 모를 것 같다. 그 아저씨는 자기 그림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 꿈꿨던 화가의 길을 포기하고 조종사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나는 그만 화가가 되고 말았다. 부끄럽다. 화가라면 마음으로 볼 줄 알아야 될 텐데. 또한 술을 마신다는 것이 부끄럽고, 부끄러운 것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술고래 이야기도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그만 나도 이상한 어른이 되고 말았다.
별이 쏟아지는 밤의 사하라에서 작은 사막여우를 봤을 때 그 신비로움을 잊을 수가 없다. 풀밭에 엎드려 울고 있던 어린왕자에게 위로하듯 읊조리던 여우의 얘기를 다시 꺼내어 여러 번 읽었다. "네 장미가 그다지도 소중한 것은 네 장미를 위하여 잃어버린 시간 때문이야." 여우의 말은 내 삶을 되돌아 보게 했다. 내 친구들, 가족들, 내가 알았던 모든 관계들….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넌 네 장미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거야…." 가슴이 저며왔다. 책임, 책임, 책임. 책임이란 단어가 메아리처럼 온몸 구석구석을 때리며 튕겨 나갔다. 기억하기도 싫은 모순과 실수의 연속이었던 나의 삶이었기에.
이제는 아름다운 친구 어린왕자와 헤어질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생겼다. 나에게 영소(永少)라는 과분한 호(號)가 생긴 것이다. 영원한 소년처럼 살라고 나를 아끼는 고마운 분이 한 해 전 지어 주셨다. 운명이다. 영원히 소년이 되어 어린 왕자와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행복한 족쇄다. 나의 하늘엔 늘 별 하나가 유독 반짝거릴 것이다.
[140자 트윗독후감]
"어린왕자와 사막여우의 대화가 가슴에 와서 박히는 걸 보고, 이 책을 읽어야 할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습니다. '어른들은 모른다'는 말이 많이 나오더군요. 참 이상한 건, 어른이 되니 그 말들의 의미를 더 잘 알겠더라는 겁니다." (페이스북 응모자 Eunae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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