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와 하나님 앞에 저의 크나큰 잘못을 회개합니다. 충현교회 성도 가슴에 씻기 어려운 아픔과 상처를 주었습니다…."
지난 6월 서울 역삼동 충현교회 김창인(95) 원로목사가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준 지 15년 만에 내놓은 '참회 선언문'은 교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교회 세습이 만연한 가운데, '대형 교회 세습 1호' 목사가 눈물로 참회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표적 대형 교회인 강남의 K교회, 강북의 K교회, 인천의 S교회 등이 모두 부자(父子)간 세습을 마쳤다. 서울의 W교회와 M교회, 부천의 K교회 등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사실상 '세습'을 추진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요즘은 아들이 교회를 개척한 뒤 아버지 교회와 합병하는 '편법'도 등장했고, 후임 목사를 따로 세우고도 아들이나 처남 등 혈연에 휘둘려 교회 분란이 계속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 개신교 신뢰 훼손하는 '교회 세습'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 감리교)가 처음으로 '교회 세습 방지'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한국 개신교 3대 교단에 드는 감리교단이 담임목사 청빙 과정에서 혈연이나 기득권 때문에 불공정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배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한 것 자체로도 평가받을 만하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성돈 교수(목회사회학)는 "교회 세습은 한국 개신교가 사회적 신뢰를 잃은 핵심 원인이었다. 감리교가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뤄 기준을 정하면, 세습을 준비 중인 다른 교회나 세습 문제에 손 놓고 있던 다른 교단도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고도 성장기 한국 개신교는 목사 1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해 몸집을 키우며, 성장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개(個)교회 중심주의'가 널리 확산됐다. 또 일부에서 창립자 은퇴 뒤에 분파 다툼 등이 발생하자, '안정적으로 교회 리더십을 교체한다'는 명분으로 교회 세습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한 신학대학 교수는 "평균 수명이 늘면서 은퇴 연령(통상 65~70세) 뒤에도 건강을 유지하게 된 목회자들이 계속 '역할'을 원하고 있다. 또 짧은 선교 역사 탓에 인적 교체와 무관하게 교회를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미비한 점도 교회 세습을 확산시킨 원인"이라고 했다.
◇감리교, '세습' 정면 돌파하고 정상화로
사실 그동안 감리교는 세습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서울 강남의 K교회 등 감리교회들은 한국 교회에서 세습이 처음 시작되던 1990년대 말부터 그 절차를 합법화·정착시킨 대표적 교회로 꼽힌다. 감리교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지역별 조직인 '연회'의 수장 격 목회자인 '감독'에게 권한 대부분이 집중되는 특유의 체제도 감리교회에서 담임목사직 세습이 활발히 이뤄진 원인"이라고 했다.
또 감리교는 지난 4년간 교단의 수장인 '감독회장' 자리 등을 둘러싼 법정 다툼이 이어지면서 교단 행정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였다. 지난 6월에야 서울 연회 감독을 지낸 김기택 감독이 법원 명령에 따라 임시 감독회장 업무를 시작했고, 교단 총회도 열리면서 행정 기능이 되살아났다. 올 9월 장정 개정을 위한 입법의회, 10월 정식 신임 감독회장 선출을 위한 총회가 예정돼 있으나, 출마 자격 논란 속에 새로운 소송이 제기되는 등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세습 금지 명문화, 넘어야 할 산 많아
감리교 한 관계자는 "세습 방지 입법을 통해 교단 안팎에 개혁 의지를 공식화하는 한편, 구성원들의 교단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장정 개정안 초안에 포함된 세습 방지 조항이 이후 내부 조정 과정에서 희석되거나, 입법의회에 상정된다 해도 반대파의 비토로 부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교회 세습 반대 운동을 꾸준히 벌여온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신동식(48·정직윤리운동본부장) 목사는 "세습은 공적 기관인 교회를 개인이나 가족의 사유물로 여기는 것으로, 신학적·성경적으로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그동안 '세습'이라는 용어 자체를 부정했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등도 이번 감리교의 입법 노력을 계기로 인식을 새로이 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