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일어나는 일이 실제로 나한테 일어나고 있다. 치욕스럽고 고통스럽고 모욕스럽다. 그가 나에게 협박을 계속하고 있다. 나를 죽일까봐 너무나 공포스럽다. 그래서 대신 내가 죽는다. 죽어서 진실을 알리겠다. 내가 당한 일을 인터넷에 띄워 알려 달라. 친구들아 도와줘. 경찰 아저씨 이 사건을 파헤쳐서 그 사람을 사형시켜 주세요….’
피자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사장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모(23·여)씨가 휴대전화에 이같은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고 동아일보가 21일 보도했다.
이씨는 지난 10일 오후 5시 10분쯤 충남 서산시 수석동 한 야산에서 아버지의 승용차 안에 연탄불을 피워 놓고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신문에 따르면 숨진 이씨의 휴대전화 수신 문자함에는 가슴을 자신의 팔로 ‘X’자로 가리고 얼굴은 수치스러운 듯 옆으로 돌린 모습을 담은 그녀의 나체 상반신 사진이 있었다. 경찰은 곧바로 발신자 추적에 나서 그녀가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근무했던 서산시내 피자가게의 주인 안모(37)씨가 발신자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충남 서산경찰서는 8일 밤 서산시 수석동의 한 모텔로 이 씨를 불러내 성폭행한 뒤 강제로 나체 사진을 찍어 알리겠다고 협박한 혐의(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지난 12일 안씨를 구속했다.
조사결과 9일 오전 집에서 자신의 나체 사진을 받은 이씨는 “친구들을 만나고 오겠다”며 아버지 승용차를 끌고 나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씨가 남긴 유서에는 ‘나는 살기 위해 그를 만나러 나갔다. 치욕을 당한 몸을 모두 소독하고 싶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 씨는 유서를 쓰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협박을 받았다. 유서에 ‘이 더러운 놈 봐라. 이 순간에도 (나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더러운 카톡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토할 것 같다’고 썼다고 동아일보는 전했다.
2008년 충남의 H대 아동미술학과에 입학한 뒤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오던 이씨는 지난해 6월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세상 경험도 하고 싶다”며 휴학한 뒤 아르바이트는 계속해 왔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장애인 시설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올해는 피자가게에서 하루 9시간씩 일해 한 달에 60만∼70만 원을 받았다. 이달 13∼15일에는 친구들과 여름휴가를 떠날 계획이었지만 피자가게 주인 안씨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 그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결혼해 아이까지 있는 유부남 안씨는 “사귀고 싶다. 안 만나주면 죽이겠다”고 이씨를 집요하게 협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씨는 경찰 조사에서 성폭행 사실을 시인했지만 8일이 처음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안씨의 여죄 여부 등을 수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서산지역 시민단체들은 20일 서산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주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폭행이 결국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을 맺게 됐다”며 “공정한 수사를 통해 사태의 진상과 가해자의 여죄를 밝히고 가해자를 엄중 처벌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