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근대 서양 학문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덫에 빠져 지금까지 자기 중심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그걸 자각하지 못하면 동아시아에서 외톨이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비에 씻겨 말간 얼굴을 한 '소녀상' 앞에서 전성곤(41)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HK연구교수는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저 같은 일본 연구자들은 지금처럼 한일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곤혹스럽지요. 지식인으로 할 말은 해야 하지만 자칫 더한 오해를 부를 수도 있고…."
국내에 일본 연구자들은 많다. 하지만 그는 드물게 오사카대학에서 일본학을 전공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총체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간 연구 성과를 담은 책 '내적 오리엔탈리즘 그 비판적 검토'(소명출판) 출간 시기가 때마침 한일 갈등이 다시 불붙은 시점과 겹쳤다. 현안부터 물어봤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는 신중했던 일본 정부가 '일왕 관련 발언' 이후 크게 반발하는 모습이다. 일본인들에게 '천황'이란 대체 무엇인가.
"일본인들에게 '천황'은 인종과 민족, 영토, 문화, 지역 등을 소통시키고 통합하는 상징이다. 근대 일본은 천황을 국가의 정점에 뒀고 일본 안팎의 이민족들도 '신민'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런 점에서 천황은 '우리'와 '타자'를 구분해 주는 상징이자 일본인을 일본인답게 해주는 '유일신'이다. 그 속에 선민의식이 숨어 있다."
―왕실은 영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에도 있다. 일왕은 뭐가 다른가.
"근대국가 성립 과정에서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전에는 쇼군이 통치했고 천황의 존재는 미미했다. 메이지부터 다이쇼, 쇼와 등 일본 제국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라는 황실 조상신을 태양신으로 보편화시켜 지금의 천황상을 주조해 냈다. 천황을 전국에 순회시킨다든가 흰 말을 탄 모습을 선별 노출하는 등 국민 사이에 제국의 구심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서구에서 막 수입된 인류학·고고학·역사학·민속학 등의 신학문들이 '근대 천황'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나.
"역사학의 기타 사다키치(喜田貞吉), 인류학의 도리이 류조(鳥居龍藏), 고고학의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 민속학의 야나기타 구니오(柳田国男)를 예로 들어보자. 이들은 일본 근대사상의 원류이자 제국으로 가는 길을 연 학자들이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일본 신화 재구성의 공모자'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도리이 류조는 일본중심주의를 위해 대만, 요동반도, 만주, 북해도를 조사한 '제국주의 시선'의 소유자였고, 일본판 융합론을 제창했다. '동아고고학'의 선도자 하마다 고사쿠는 한반도 남부와 규슈의 유물이 유사하다는 '과학적 실증물'을 통해 국경을 초월한 사유를 제창했다. 하지만 일본 천황이 살았다는 지역의 유물이 가진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자국중심주의를 뒷받침했다. 이처럼 네 학자는 서구 이론을 받아들여 일본중심주의를 재구성한 오리엔탈리스트들이었다."
―일본 지식인들에게 일왕은 성역인가.
"비판적인 지식인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일왕을 학문적 주제로 삼는 것을 꺼린다. 거론하는 학자도 어느 선을 넘을 경우 우익단체 등의 테러를 걱정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금기가 되는 것이다. 일본 내부에도 자성의 움직임은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일본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면 해법은.
"무엇보다 감정적인 다툼의 소지를 줄여야 한다. 그 점에서 일본은 자신들의 인식 기저에 자리 잡은 내적 오리엔탈리즘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근대로 가는 과정에서 '천황 제국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것을 국가 내부의 지도층과 시민들이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깨닫도록 하는 데 양국 지식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과의 현안에 대해서도, 인류 보편적 시각에서 문제를 보고 발언해야 한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동아시아에서의 공존과 공영의 담론을 주도할 수 있다."
☞내적 오리엔탈리즘(Inner Orientalism)
'오리엔탈리즘'은 팔레스타인계 미국 영문학자인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가 1978년 출간한 책 제목이다. 18~19세기 유럽이 동양을 내려다보던 편향된 시각을 말한다. 사이드는 유럽 중심의 인식이 ‘열등한’ 동양에 대한 서구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한다고 비판했다. 전성곤 교수는 이 용어를 근대 일본의 인식론에 차용했다. 일본이 주변국을 바라보는 시선의 바탕에 일왕을 정점으로 한 자민족우월주의가 내재돼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