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국민이 금메달의 감격을 나누는데 갑자기 라면이 끼어들었다.

한국 체조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딴 양학선(20•한국체대)에 관련된 얘기다.

라면 이야기는 7일 양학선이 금메달을 딴 직후 어머니 기숙향씨와 방송사의 인터뷰 과정에서 나왔다.

기씨는 인터뷰 도중 “아들이 오면 뭘 제일 빨리 먹고 싶을까? 라면? 너구리 라면? 너구리 라면 말고 엄마가 칠면조 고기로 맛있게 요리해줄게”라고 했다.

양학선 어머니의 말에서 양학선이 평소 라면을 즐겨 먹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방송인터뷰를 본 너구리 라면 제조사인 농심측이 양학선의 집으로 연락해 너구리 라면을 평생 무상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이라면 참으로 눈치 빠른 마케팅이다. 농심측 입장에서 보면 금메달리스트에 편승해 돈 안들고 벌써부터 엄청난 광고효과를 거둔 셈이다.

앞으로 어느 정도의 분량을 어떤 식으로 무상제공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순전히 양학선 가족을 위해 제공하는 것이라면 푼돈으로 생색내며 광고효과를 거두려는 치사한 일이다.

하루에 1개씩 먹기도 어렵지만 하루 1개로 잡으면 1년에 365개다. 너구리 라면을 생산가격 아닌 소비자가격(1개 850원)으로 계산해도 1년에 31만250원에 불과하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루에 10개꼴 먹는다고 하면 1년에 3650개, 돈으로 치면 310만2500원이다.

양학선 가족에 대한 라면 무상제공이 뉴스가 되면서 오버랩되는 일이 있다. 26년 전인 1986년에 있었던 큰 해프닝이다.

그해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때 여고 2년생 육상선수 임춘애는 800m, 1500m, 3000m에서 우승했다. 육상후진국 한국에서 장거리 부문 3관왕이 탄생했기에 온나라가 들썩거렸다.

편모 슬하에서 자라며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임춘애는 단번에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해 아시아를 제패한 영웅이 됐다. 언론이 그렇게 만들었다.

당시 온국민의 가슴을 적셨던 임춘애 인터뷰 기사의 핵심은 “밥보다 라면을 더 많이 먹고 뛰었다. 우유 마시며 연습하는 친구가 부러웠다”였다.

이 기사가 화제가 되면서 라면 제조사는 임춘애에게 라면을 무상으로 준다고 했고, 우유 제조회사에서도 그랬다.

사실 임춘애는 육상코치의 부인이 가끔씩 끓어준 라면을 간식으로 먹곤 했을 뿐이고, 우유는 잘 소화하지 못하는 체질이었다.

언론이 임춘애를 놓고 영웅스토리를 짜내는 과정에서 기막힌 소설로 각색된 것이었다.

해프닝이었지만 그 시절엔 그래도 라면 무상제공, 우유 무상제공에 의미가 있었고 인간적인 체취도 느껴졌다.

양학선 어머니의 방송인터뷰에 따르면 양학선은 라면을 간식으로 즐겨먹는 것 같다.

그런데 이같은 방송인터뷰을 보자마자 라면 평생 무상제공을 홍보한 라면제조사는 1986년도식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사실 26년전 임춘애조차도 무상으로 제공된 라면과 우유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쯤 되는 스타가 특정 제품을 먹거나 사용한다면 오히려 먹어주고 사용해주는데 따른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게 오늘날의 스포츠마케팅이다. 라면회사가 몰랐을까.

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