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16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초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지냈으나 석 달여 만에 '반혁명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됐다가 풀려난 뒤 미국으로 건너갔던 장도영(89·사진) 전 국방장관이 미국 플로리다주(州) 올랜도에서 3일 오후 8시 20분(현지 시각) 별세했다. 장 전 장관은 수년 전 뇌출혈 이후 알츠하이머병으로 투병생활을 해 왔다.
◇박정희와의 인연, 그리고 5·16
장 전 장관은 1923년 1월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다. 일본 동양대학 등에서 유학생활을 한 뒤 귀국해 일제(日帝)에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광복 후 국군 대위로 임관했다.
자신보다 여섯 살 위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은 6·25전쟁 이전부터 시작됐다. 1948년 발생한 여순반란 사건에서 박정희 소령이 군내 남로당 세력으로 몰려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자 백선엽 장군과 함께 구명운동을 벌였다. 당시 육군 정보국장이었던 장 전 장관은 특사로 풀려난 박 전 대통령을 자신의 보좌관으로 삼았고, 이후 소령으로 복직시키기도 했다.
장 전 장관은 육군 제9사단장, 6사단장, 육군참모차장, 제2군사령관 등을 지낸 뒤 제2공화국 때인 1961년 2월 장면 국무총리에 의해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그는 총장 취임 후 석 달 만에 터진 5·16을 전후해 줄곧 모호한 태도를 보였고, 5·16을 미리 알고도 묵인했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김종필 전 총리는 지난해 본지 인터뷰에서 "장도영 장군은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게 계산한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혁명을 한다고 하니까 (장도영 장군이) '(혁명) 계획서가 있느냐'면서 박(정희) 소장에게 달라고 하더래요"라면서 "박(정희) 소장이 '장(도영) 장군과 나는 남이 모를 만큼 깊은 사이야, 날 믿고 줘' 해서 하는 수 없이 드렸다"고 밝혔다. 김 전 총리는 계획서를 건넨 3일 후에 장 전 장관에게서 돌려받기로 했지만 끝내 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장 전 장관은 생전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쿠데타 세력의 날조된 증언"이라고 했었다. 그는 5·16 계획을 하루 전에야 알았고, 5·16 세력에 대해 방첩대를 동원해 조사를 실시했으나 거짓 보고로 이를 막는 데 실패했다고 했다.
◇초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두 달도 못 돼 쫓겨나
장 전 장관은 5·16 직후 외형상 '혁명 정부'의 1인자였다. 그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내각 수반 겸 국방장관, 계엄사령관 등을 맡았다. 박 전 대통령은 국가재건회의 부의장이었다. 5·16혁명 공약도 장 전 장관의 이름으로 발표됐다.
장 전 장관은 그러나 5·16 발발 후 21일 만인 6월 6일 국방장관에서 해임됐으며, 7월 3일 국가재건회의 의장직에서도 물러났다. 이어 8월에 중앙정보부에 의해 '반혁명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돼 기소됐다. 장 전 장관을 '제거'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아닌 김종필 전 총리였다. 김 전 총리는 "(평안북도 출신인) 장 장군이 자꾸 이북 출신 장군들을 포섭하는 등 최고회의 핵심들을 60%가량 손아귀에 넣고 군과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었다"며 "이러다간 박(정희) 소장 결딴난다. 내 생각대로 해야겠다 결심했다"고 했다.
김 전 총리가 7월 2일 밤 중앙정보부 요원 20여명을 이끌고 중앙청 총리 집무실 옆 별실에 기거하던 장 전 장관을 찾아가 "죄송합니다. 댁에 동행해야 하겠습니다"라고 하자 장 전 장관이 앉아 있다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왜 이제 왔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 전 총리는 "(나중에 이 사실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자) 놀라 가지고 '왜 그렇게 했어?'라고 했다"며 " '혁명을 수행하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내가 다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장 전 장관은 곧 형 면제로 풀려난 뒤 1962년 미국 미시간주(州)로 건너갔다. 부인 백형숙씨는 "우리 부부가 미시간주에 정착하게 된 것은 당시 (박정희) 정권이 (교민이나 한국 유학생이 없는 곳으로) 지정해준 것"이라고 했다. 장 전 장관은 '백내과'를 운영하던 부인 백형숙씨 친정의 도움으로 미국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미시간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여년 동안 위스콘신대 교수, 웨스턴미시간주립대 정치학 교수 등을 역임했다. 장 전 장관은 도미(渡美) 후 5·16에 대해 줄곧 부정적 입장을 밝혔으나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박정희·김종필에 대해)서운한 건 없다"고도 했다.
유족은 부인 백형숙씨와 아들 효수·경수·진수·완수씨와 딸 윤화씨 등 4남1녀가 있다. 장례식은 8일 미국 올랜도에서 유족 요청에 따라 가족장으로 열리며 시신은 묘소가 준비된 미국 LA에 안치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