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산부인과 병원에서 일어난 환자 시신 유기 사건과 관련, 용의자인 의사 김모(45·산부인과 전문의)씨가 시신을 유기하는 과정에 아내를 끌어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은 단순 의료 과실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용의자가 소위 '텐프로'(10%·A급 접대부를 고용한 서울 강남의 특급 룸살롱을 가리키는 은어) 여종업원인 숨진 이모(30)씨와 내연 관계였다는 사실 ▲사건 당일 용의자가 숨진 여성에게 먼저 문자메시지를 보내 밤 11시 병원으로 불러냈다는 사실 ▲여성의 사망 후 시신 유기 과정에 용의자의 아내가 가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시신 유기 17시간 뒤 자수한 용의자는 당초 "작년에 수술해준 환자(숨진 이씨)가 몸이 피곤할 때 병원에 찾아와 영양제 주사를 맞았다"며 "적정량의 약물을 투여했는데 깨어나지 못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아내는 왜 시신 유기에 개입했나
경찰에 따르면 사건 당일(7월 31일) 용의자 김씨가 서울 성북구 자택으로 돌아왔을 때는 오전 3시가 넘어 있었다. 김씨는 병원에서 빼낸 이씨의 시신을 자신의 그랜저 승용차 조수석에 실어놓은 상태였다. 집에 도착한 김씨는 "내 실수로 환자가 죽었다고 아내에게 고백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후 차량 3대가 시신 유기에 동원됐다. 김씨는 시신을 실은 채 차를 몰고 병원으로 돌아갔고, 김씨의 아내는 자기의 싼타페 차량을 몰고 김씨를 따라갔다. 김씨는 시신을 이씨가 세워둔 이씨 소유의 아우디 차량 조수석으로 옮겼다. 김씨는 이씨의 아우디 차량을 몰고 한강 잠원지구 주차장으로 이동했고, 병원 인근에서 대기하던 김씨의 아내도 뒤따랐다. 김씨는 오전 4시 40분쯤 이곳에 아우디 차량과 이씨의 시신을 그대로 둔 채 아내의 싼타페 차량을 타고 도주했다.
시신을 유기한 잠원지구 주차장은 평소 사람이 자주 오가는 곳이다. 차량도 주차선을 비켜나가 주차돼 있었다. 이씨의 시신은 유기 14시간 후인 오후 6시 40분쯤, 젊은 여성이 차 안에서 장시간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시민에게 발견됐다. 김씨는 오후 9시 30분쯤 변호사와 함께 경찰에 자수했다. 그는 이씨의 시신을 유기한 혐의(사체유기)로 3일 구속됐다.
아내 서모(40·주부)씨는 경찰에서 "남편을 도우려는 마음에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서초경찰서는 서씨를 남편의 시신 유기를 방조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영양제 맞을래?" 의사가 불렀다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 김씨는 사건 전날인 7월 30일 밤(8~11시로 추정) 내연녀 이씨에게 먼저 "영양제 맞을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 병원으로 불렀다. 당시 김씨는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자를 받은 이씨가 병원에 도착한 것은 30일 밤 11시쯤. 김씨는 "둘만 있는 병실에서 수면 유도제인 '미다졸람'과 '하트만덱스(포도당 영양제)' 등이 들어 있는 수액을 섞어 이씨에게 투약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미다졸람'은 환각 용도로도 악용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병원 관계자는 "미다졸람은 맞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나쁜 기억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주사 맞고 15분 뒤에 잠이 깼고, 그 이후 시간은 (두 사람 간의) 신체 접촉이 있었고, 두 사람은 이후 다시 잠을 잤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했다.
용의자 김씨는 "오전 2시쯤 간병인 침대에서 잠을 자다 깨어나 보니 이씨가 숨을 쉬지 않았다"며 "심폐 소생술을 시도했지만 숨졌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수술해준 환자와 부적절한 관계"
명문 의대를 나온 산부인과 전문의 김씨와 이씨의 만남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찰에 따르면 숨진 이씨는 김씨에게 수술을 받은 뒤 가까워졌다. 이씨가 회복된 이후 두 사람은 함께 식사를 했고, 이후 3~4개월에 한 번 정도 만나는 관계로 발전했다.
김씨의 변호인은 "두 사람이 내연 관계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이 연인처럼 주기적으로 만난 것은 아니지만, 정이 있는 관계"라고 말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한 것은 맞지만, 내연 관계는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시신 유기를 도운 서씨는 "숨진 여성이 남편과 내연 관계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경찰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