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술 문화는 청소년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술 마시는 것은 몸에 해롭다"는 어른들 말은 학생들에게 '먼 나라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본지 취재팀은 수능 100일을 하루 앞둔 지난 30일 오후 서울 노원·신촌·강남 일대에서 고교생 100여명을 만나 음주 실태를 물었다. 음주 경험이 있는 고교생 100명이 전한 '대한민국 청소년이 술 마시는 방법'은 실로 다양했다.

'뚫리는' 가게·편의점 곳곳에 널려

가장 많은 학생(46명)은 '뚫리는 가게'를 찾아 술을 마신다고 했다.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고 마음껏 술 마실 수 있는 곳을 청소년들은 '뚫리는' 곳이라고 불렀다. 마포구의 한 고교 3학년 김모(18)군은 "신촌만 해도 (미성년자에게) 술 파는 가게가 널렸다"며 "여자 친구랑 같이 가서 분위기 내며 칵테일을 마신 적도 있다"고 말했다.

노원구 고교 2학년 최모(17)군은 "애들끼리 '뚫리는 집' 리스트를 다 공유하고 있다"면서 "특히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애들이랑 가면 백퍼센트 오케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질병관리본부 조사에 따르면 술 구매를 시도한 청소년 중 82.5%가 '제지 없이 술을 살 수 있었다'고 응답했다.

맥줏집에 모여 함께 술 마시고… 31일 오후 9시 15분쯤 서울 건대입구역 근처 셀프 맥줏집에서 학생들이 모여 앉아 ‘수능 100일주’를 마시고 있다.

21명은 편의점을 꼽았다. 이들은 주로 심야 시간을 이용한다고 했다. 노원구에 사는 한 학생은 "편의점에 새 물건이 들어오는 새벽 2~3시에는 종업원이 바빠서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낮에는 주인이 있어서 신분증 확인을 철저히 하는데, 새벽에는 알바생들이 졸거나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느라 신분증 확인을 아예 안 한다"고 했다.

학교마다 신분증 위조 전문가 있어

취재팀이 만난 학생 중 5명은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술집에 들어간다"고 답했다. 한 학생은 "주민등록증의 코팅된 겉면을 살짝 벗긴 뒤 칼로 출생 연도 숫자를 긁고 그 부분에 책 뒤의 바코드를 오려 붙이는 식"이라고 위조 방법을 상세히 설명했다. 또 다른 학생은 "어설프게 위조해도 지갑 안 주민증 넣는 투명한 부분에 넣어서 보여주면 꺼내보라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강남 한 고교 3학년 김모(18)군은 "학교마다 주민증 잘 만지는(위조하는) 애들이 1명씩은 꼭 있다"며 "그 친구들한테 5000원이나 1만원 주면 만사 오케이"라고 말했다.

음식 배달시킬 때 슬쩍

학생 10명은 술을 배달시켜 마신다고 했다. 이들은 치킨이나 족발 등 배달 음식과 함께 술을 주문하거나 잔심부름을 해주는 심부름센터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노원구에 사는 이모(18)군은 "여럿이 모여서 술을 많이 마실 땐 심부름센터가 최고"라며 "맥주 8병을 시키면 5000원 정도를 내야 하는데, 우리 처지에선 좀 부담스럽지만 돈 많은 애들은 무조건 이 방법을 쓴다"고 말했다. 강남 한 고교의 김모(17)군은 "족발 시킬 때 맥주랑 소주를 같이 주문하면 백퍼센트 누가 먹을 건지 물어보지 않는다"고 했다. 고교 2학년 최모(17)군은 "수입 맥주가 먹고 싶은데 편의점이 뚫리지 않으면 종종 심부름센터를 이용한다"며 "배달 오는 형이 매번 '또 술 마시느냐'고 말하면서 술을 준다"고 말했다.

술자리 2차는 어디로… 이날 밤 서울 강남역 인근 술집 앞에서 목격한 학생 8명은 “2차는 어디로 갈까” “어느 술집이 값이 쌀까” 등을 얘기하고 있었다.

노숙자·행인에게 부탁하기도

노숙자나 길 가는 행인에게 부탁해서 술을 산다고 답한 학생도 13명이나 됐다. 고교 3학년 최모(18)군은 "수유역이나 미아역 주변에 있는 노숙자들한테 2000원 쥐여주고 술 좀 사다 달라고 하면 오케이"라고 말했다. 서대문구에 사는 이모(18)양은 "우리(여학생들)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오빠들한테 다가가서 '오빠 죄송한데 술 좀 사다주시면 안 돼요'라고 말하면 무조건 된다"고 말했다.

[[천자토론] 술에 너그러운 대한민국,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