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냉전시대 태평양과 인도양의 미 해군을 견제하는 전략적 기지로 활용했던 베트남 남부의 캄란만(Cam Ranh Bay)으로 복귀할 움직임을 본격화하면서 중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분쟁 중인 베트남이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쯔엉 떤 상 베트남 국가주석은 지난 27일 소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캄란만에 러시아 선박수리기지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고 관영 중국청년보가 30일 보도했다. 쯔엉 주석은 "러시아에 제공되는 항구는 비군사용기지"라면서도 "캄란만이 양국 간 군사 협력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도 회담 직후 "러시아는 베트남 원전 건설에 쓰일 80억달러를 포함해 총 100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중국청년보는 전했다. 양국이 캄란만 임대 문제와 관련해 상당히 의견이 접근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양국 정상은 또 이번 회담 직후 발표한 공동 성명에서 "양국 군사기술 분야 협력과 국방·안보 파트너 관계를 발전시켜나간다는 데도 합의했다"고 밝혔다. 베트남은 지난 2009년부터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군사력 균형을 맞추기 위해 러시아로부터 잠수함과 군함, 전투기, 미사일 등을 대대적으로 구매하고 있다.

베트남 남부에 위치한 캄란만은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교통로 상에 있는 천혜의 항구로, 남중국해를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 요지이다. 19세기 이후 열강들은 앞다퉈 이곳을 해군기지로 활용했다. 인도차이나반도를 식민지로 운영했던 프랑스가 이곳에 해군기지를 뒀고, 1905년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발틱함대도 이곳에 기항했다. 베트남전 당시에는 미군의 군항 역할을 했으며, 베트남전 종전 이후인 1979년부터는 러시아 해군이 25년간 빌려 사용한 바 있다. 러시아는 지난 2002년 경제난 속에 연간 3억달러에 이르는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철수했다.

중국은 베트남이 군사적 목적으로 러시아를 끌어들이려는 뜻으로 보고 있다. 중국청년보는 "비록 선박수리기지라고 하지만, 군사 전략적 목적임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면서 "러시아 해군이 캄란만에 진입하면, 베트남은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해 또 한 장의 카드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썼다. 마리밍(馬立明) 선전(深川)특구보 평론원도 "베트남이 미국과 일본, 호주에 이어 이제 러시아까지 끌어들여 남중국해 분쟁에서 중국과 균형을 맞추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은 지난 6월 베트남전 종전 이후 처음으로 캄란만을 방문한 바 있다.

러시아는 지난 4월 남중국해 상의 베트남 측 경제수역에서 베트남과 유전을 공동 개발하기로 하는 등 남중국해 문제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있다. 캄란만을 오는 2020년까지 새로 건조하는 신형 항공모함의 기항지로 활용한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빅토르 치르코프 러시아 해군사령관은 지난 27일 새 항모 건조 계획을 확인하면서, "쿠바와 세이셸, 베트남 등지에 정비·보급기지를 구축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고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이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