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수원 서포터스 '프렌테 트리콜로(옛 그랑블루와 하이랜드의 통합체)'가 보여준 모습은 도가 지나쳤다.
부진한 팀 성적을 성토하는 서슬퍼런 네거티브 걸개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킥 오프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마자 걸린 것은 '유나이티드=돼지'라는 문구였다. 프로연맹의 제지로 한동안 내려져 있던 걸개는 승리가 거의 확정되어 가던 후반 막판 다시 올라갔다. '베짱이도 돼지는 이기네요^^ㅋ'라는 걸개가 하나 더 추가됐다.
수원 서포터스가 내건 '돼지'의 뜻은 인천 서포터스를 지칭한 것이라고 한다. 인천 서포터스의 인원은 많지만 응원을 하는 이는 소수 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아냥 댄 것이다. 인천 서포터스 뿐만 아니라 구단과 선수단을 충분히 자극할 만한 문구였다. 인천 구단 관계자는 "걸개를 보고 항의를 했는데, 경기 막판에 다시 (걸개가) 올라오더라"며 "원정경기이니 할 말은 없지만 기분이 좋았을 리 있겠느냐"고 말했다. 평소 거칠기로 유명한 인천 서포터스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 자칫 큰 싸움으로도 번질 수 있는 문제였다. 이날 인천 서포터스가 '인천 선수 중에 베짱이는 없다'라는 문구가 수원 서포터스를 자극해 급조한 걸개라는 말도 있다.
축구장에서 상대를 비하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K-리그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상대를 비난하는 구호는 흔히 들을 수 있다. 상대 선수와 팬의 기를 죽이기 위해 곧잘 활용된다. 하지만 열심히 뛴 상대를 위해 박수를 쳐줄 수 있는 '아량'도 축구가 가진 매력 중 하나다. 좋은 플레이를 펼친 선수는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박수를 받는다. 반대로 경기의 흥을 떨어뜨리는 저질 플레이는 지탄을 받는다. 홍명보호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맞대결한 스위스의 모르가넬라가 보여준 비매너 플레이는 그가 볼을 잡을 때마다 터진 야유로 귀결됐다.
수원 삼성을 상대한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력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후반전 파상공세로 수원을 턱밑까지 추격하기도 했다. 이날 버스 4대를 나눠타고 수원 원정에 나선 인천 서포터스도 경기장 한 구석을 가득 메운 수원 서포터스 못지 않은 열띤 응원을 선보였다. 이런 상대를 두고 수원 서포터스가 안방에서 보여준 것은 '아량'이 아닌 '폭력'이었다.
응원은 자유다. 누가 강요해서 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을 지켜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고, 같은 유니폼을 입는 것으로도 통한다. 경기장 밖에서 숨을 죽이며 지켜보는 팬들도 마찬가지다. 경기장에 와서 목청껏 소리를 높여 응원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그 자체가 '권력'과 '우월함의 상징'이 될 수는 없다. 착각을 해도 제대로 했다.
상대를 향한 네거티브 걸개는 경기 중단과 나아가 해당 구단 징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K-리그 정관 및 규정 제3장 제21조 '경기 안전과 질서유지'의 적용을 받게 된다. 관중의 소요, 난동으로 인해 경기진행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선수단, 심판진, 코칭스태프를 비롯한 관중의 안전과 경기장 질서 유지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관련 구단이 사유를 불문하고 그에 대한 일체의 책임을 부담한다고 되어 있다. 프로연맹 관계자는 "특정 관중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구단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일부 수원 서포터스들은 경기 막판 윤성효 감독 퇴진 콜이 나오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감독이 보여주고 있는 팀 운영과 경기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수원이 인천전에 앞서 5경기 연속 무승(2무3패)을 할 때 수원 서포터스는 경기 전후로 윤 감독을 겨냥해 '퇴진' '집에나 가라'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 출입금지' 등 비난 구호를 펼쳤다. 수원 구단 관계자가 "경기장에 윤 감독의 자녀들도 보고 있다"며 자제를 요청해도 안하무인이었다. 그러면서도 인천전에서 승리하자 먼저 자신 쪽으로 다가오지 않은 선수들에게도 볼멘 소리를 했다. 하프라인 근처에서 서포터스에 인사를 하고 라커룸으로 향하던 수원 선수단은 이석명 단장이 "그래도 인사는 하고 들어가자"는 말에 발걸음을 돌렸다. 이윽고 만세삼창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과연 누구를 위한 외침이었을까.
입력 2012.07.3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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