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두경아 기자
사진 방문수
결혼 전 웨딩 촬영도 없었다. 결혼식 당일 몇 장 찍은 사진이 전부일 뿐. 예단이나 예물도 주고받지 않았고, 축의금이나 화환도 받지 않았다.

작은 교회에서 하객 1백 명 정도만 초청해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 이재영·박정숙 커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의미 있는 결혼식을 하는데, 우리의 사랑 외에 또 무엇이 필요하겠어요?"

스튜디오에 들어선 박정숙의 양손에는 짐이 잔뜩 들려 있었다. 케이크와 빵이 담긴 종이봉투와 의상 가방. 빵과 케이크는 촬영할 스태프를 위해 가져온 간식이었고, 촬영을 위해 준비한 의상은 무릎 정도 길이의 핑크색 원피스였다. 박정숙은 원피스에 잘 어울리는 진주 목걸이와 팔찌로 스타일링하고 카메라 앞에 섰다.
"제 시누이가 선물해준 원피스예요. 예쁘죠? 인터뷰가 있다고 하니까 저한테 잘 어울릴 것 같다면서 선물해줬어요. 사진 예쁘게 찍어주세요. 나중에 시누이에게도 보내주게요."
시댁, 요즘 유행하는 말로 '시월드'의 사랑을 받는 새색시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박정숙은 촬영 내내 특유의 우아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원피스를 선물한 다정한 시누이는 바로, 홍콩에 있는 CNN 인터내셔널 아시아·태평양 본부의 본부장인 엘레아나 리다. 그녀는 '한국계 파워 우먼'으로 유명하다. 엘레아나 리의 동생이자, 박정숙의 남편은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세계경제포럼 아시아팀 부국장으로 활동하다 19대 총선을 통해 새누리당 비례대표 24번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들의 어머니는 13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유엔 세계관광기구 스텝(STEP)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도영심 씨다. 박정숙은 지난 5월 19일 이재영 의원과 웨딩마치를 울려 이 대단한 '시월드'의 일원이 됐다.

첫 만남에서 "사귀자"고 했던 남편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세계개발원조총회에서 이루어졌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반기문 UN 사무총장 등이 참석했던 이 회의에 이재영 의원은 세계경제포럼 아시아팀 부국장으로, 박정숙은 국제백신연합(GAVI Alliance)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그곳에서 이재영 의원은 박정숙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두 사람을 모두 아는 지인을 통해 통성명을 하게 된 두 사람은 같은 날 저녁 만찬 장소에서 재회했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같은 차를 타고 가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헤어지기 전에 남편이 차 한잔할 수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일정이 끝난 터라 여유가 있었어요. 남편이 저보다 다섯 살이나 어려서 부담이 없었던 것 같아요. 회의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 남편이 대뜸 '한번 사귀어보자'고 하더군요. 저는 '무슨 말이에요?' 하면서 그저 지나가는 말로 듣고는 연락처만 교환했어요."

이재영 의원은 곧 스위스 제네바로 돌아갔으나, 만남은 전화로 계속 이어졌다. 제네바와 서울, 전혀 다른 공간에 있었지만, 두 사람은 매일 전화 통화를 하며 조금씩 더 친해졌다.
"연애기간 6개월 동안 저희가 만난 건 20일 정도밖에 안 됐을 거예요. 남편은 스위스에서 계속 출장을 다녔으니 전화만이 유일한 연결 수단이었죠.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 아니었고, 발전할 가능성 같은 것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저 좋은 친구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알면 알수록 나이 차이도 느껴지지 않았고, 믿음이 가더군요."
관심사가 비슷하다 보니 두 사람의 대화는 끊임이 없었다. 다른 연인들과는 달리 대화 내용의 대부분은 그날의 뉴스거리로 채워졌다. 그런 대화 속에서 사랑의 감정이 싹텄고, 말 잘 통하는 좋은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남편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왜 나랑 결혼했어?' 남편은 '당신이 나를 믿는 것 같아서.'라고 답하더군요. 남편보다 사회 경험도 많고 나이도 많은 제가 은연중에 남편을 신뢰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혼자 살아와서 결정하고 추진하는 데 막힘이 없어요.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꼭 지키죠. 스위스 시계처럼 정확해요. 그래서 더 믿었던 것 같아요."
박정숙은 "최고의 디지털 기기를 사용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랑을 키웠다"고 말한다.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 등 간접적인 소통 대신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를 통해 화상 통화로 매일 만났다.

멘토였던 대사님이 바로 시어머니?!
재미있게도 박정숙은 남편보다 시어머니 도영심 이사장을 먼저 알았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두 사람은 몇몇 행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어머님은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작은 도서관을 지어주는 일을 하고 계세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도서관이 벌써 132개나 돼요. 저는 어머님을 '대사님'이라고 불러왔어요. 지금도 제 휴대폰에는 '대사님'으로 저장돼 있고요. 어머님은 제 멘토셨어요. 자문을 구해야 할 때 찾아뵙고 조언을 얻곤 했어요. 제가 미국 PBS 방송에 한국의 전통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맡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어머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박정숙은 남편과 더 친해진 뒤에야 이재영 의원의 어머니, 즉 시어머니가 될 사람이 도영심 이사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그럼 당신이 그분의 아들?!"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어머님은 그전에 저를 보시면서 '괜찮은데, 왜 아직 결혼을 안 했을까?' 하고 궁금해하셨대요. 결혼을 결정하고 나서는 어머님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걱정되더군요. 다행히 어머님은 사랑을 우선으로 생각하시는 분이라, 반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셨어요."

이들의 결혼은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두 사람이 아닌 세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모였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만나면 국제 기아 문제나 다문화가정 등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니, 고부갈등은 끼어들 틈이 없다. 박정숙은 시어머니와 함께 국제 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박정숙 집안에서도 두 사람의 결혼을 두 손 들어 환영했다. "정말 많이 좋아해서 무안할 지경"이었단다. 안타까운 것은 친정어머니의 부재다. 박정숙의 어머니는 3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박정숙은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자주 눈물을 글썽였다. "엄마가 좋아하셨을 것"이라면서.

"결혼을 결정하고 남편이 친정집에 인사를 왔어요.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날이 어머니 기일이었어요. 참 희한한 인연이죠."
결혼식을 마친 부부는 신혼여행을 미룬 대신, 대구 인근에 있는 박정숙의 어머니 산소에 찾아갔다. 제수용품은 시어머니가 마련해줬다.

"어머님이 남편에게 '장모 산소에 다녀오라'면서 밤을 새워 제수용품을 준비해주셨어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분이라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그렇게 엄마 산소에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엄마가 더 이상 그곳에 안 계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마음이 편안해졌죠."

결혼식을 준비하며 자주 어머니의 공백을 느꼈던 박정숙은, 그럼에도 자신이 좋은 사람을 만나고 결혼까지 이를 수 있던 건 어머니 덕분이라고 한다.
"엄마는 늘 제 곁에 계셨고, 저를 잘 밀어주셨어요. 이 모든 건 다 엄마 덕분인 것 같아요. 이제는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신 것 같네요."

작은 교회에서 소박한 결혼식 올리다
박정숙은 그동안 늘 사랑보다는 일이 먼저였다. 결혼은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인연을 만나자 결혼까지 순조롭게 진행됐다.
"결혼은 마음을 먹어야 하는 거더라고요. 그동안은 제 관심사가 아니었어요. 제게는 늘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요.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남을 위해 사는 삶도 좋지만, 저를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은 바빴고, 몸이 많이 아팠죠.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쯤 남편을 만났어요. 인연이 아니면 노력해도 안 되잖아요. 남편과는 물 흐르듯 결혼까지 간 것 같아요."
두 사람 모두 늦은 결혼이었고, 겉치레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결혼식은 소박하게 치르기로 했다. 웨딩 촬영도 하지 않았다. 결혼식 당일 사진을 찍은 게 전부였고, 예물과 예단도 주고받지 않았다. 결혼식장으로는 호텔이나 예식장 대신 작은 교회를 택했으며, 하객은 꼭 와서 축하해줄 수 있는 사람들만 초대해 1백 명 정도 됐다. 화환이나 축의금조차 받지 않았다. 청첩장도 찍지 않고, 모바일 청첩장으로 대신했다. 시간도 오후 3시라 따로 식사를 준비하지 않아도 됐으니 그야말로 간소한 결혼식이었다.
"남편이 결혼 전에 '꼭 다이아 반지가 필요해요?' '화려한 결혼식을 하고 싶어요?' 하고 묻더군요. 저는 어려서부터 소박한 결혼식을 꿈꿨기 때문에 그런 건 상관없었어요. 저희가 주고받은 건 이 커플링이 전부예요. '이렇게 의미 있는 결혼식을 하는데, 우리의 사랑 말고 또 무엇이 필요하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죠."
결혼식에서 비용이 가장 많이 든 항목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박정숙은 "저요!"라며 웃는다. 드레스 대여와 결혼식 당일 헤어, 메이크업에 들어간 비용을 말하는 것이다. 결혼 전 드레스부터 다양한 항목의 협찬이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한 터였다.
"국내 디자이너 선생님의 드레스를 (유료로) 빌려 입었어요. 마침 선생님이 패션쇼를 준비하고 계셔서 정말 예쁜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죠."
결혼식은 예정보다 앞당겨졌다. 애초 6월 이후를 계획했으나 이재영 의원이 5월 말 국회 등원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숙은 "그때 결혼하는 것 자체가 민폐일 수 있고, 의원으로서 일에 전념해야 할 시기에 결혼으로 시끄럽게 하기 싫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결혼을 발표하기도 전에 결혼설이 먼저 보도되면서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정치는 상대가 있는 일이더라고요. 상대가 있는 퍼블릭 서비스(공적인 일)구나, 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동안 해온 방송이나 홍보대사 일은 그저 제가 열심히 하면 됐는데, 정치는 그게 아니더군요. 정치인의 아내가 되다 보니 행동도 조심하게 되고 많은 분들의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 같아요."

정치인 남편 덕분에 객관성을 갖게 돼
이들은 결혼식 한 달 뒤에야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는 다름 아닌 여수. 박정숙이 여수세계박람회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던 터라 겸사겸사 그렇게 정했다. 주말을 이용해 2박3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그나마 하루는 박정숙의 제자들과 함께했고, 온전한 부부만의 시간을 가진 건 1박2일에 불과했다. 소박한 결혼식만큼이나 심플한 신혼여행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일정이 바쁜 탓도 있었다.
"국회의원이 그렇게 바쁜지 몰랐어요. 국회가 열리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 일도 안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남편은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까지 출근해요. 뉴스 보고, 회의 하고…. 법안을 만들 때까지 사전 작업을 하더라고요."
대전엑스포 홍보사절로 데뷔해 전문 MC와 연기자로 활동해온 박정숙은 다문화가정 어린이를 지원하는 국제기구 호프키즈 코리아 대표로 활동하는 등 사회적인 이슈나 시민활동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진보 성향을 가지기 쉬운 환경이다. 반면 남편인 이재영 의원은 보수 성향인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오히려 객관성을 갖는 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그동안 저는 시민단체 입장이라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고, 정부나 국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남편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많은 부분을 알게 됐죠. 저희 부부는 정치나 사회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에요. 제가 반값 등록금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 등 현장의 목소리를 남편에게 들려주기도 하고요."
이재영 의원은 새누리당이 영입한 청년 인재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순위 24번으로 당선된 그는 국제기구 전문가로서 국제 감각이나 외교 등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판단되어 영입됐다.
"한번은 남편이 제게 묻더군요. '정치권에서 제안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본인이 원한 게 아니라 주변에서 권한 거라면 하늘의 뜻이다'라며 전후사정도 모르면서 '꼭 해야 한다'고 답했어요. 알고 보니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공천을 받은 상태였더라고요. 본의 아니게 찬성한 입장이 됐죠.(웃음) 이왕 국회의원이 됐으니, 진짜 다른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어요."
시민단체 대표, 경희대 국제대학원 객원조교수를 맡고 있는 박정숙에게 정치인 아내의 역할이 추가됐다. 그녀는 "정치인의 아내로서 활동을 조심하게 된다"면서도, 자신의 영역 안에서 발전시킬 수 있는 계획들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제는 혹시라도 이슈가 될 만한 일들은 못할 것 같아요. 많이 조심해야 하죠. 대신 공부를 더 하거나 오히려 원래 하던 일에 집중하고 싶어요. 그동안 여러 홍보대사를 맡아오면서 방송일을 많이 못했는데, 인터뷰 프로그램 진행을 다시 맡고 싶기도 하고요. 국회의원 아내로서 내조도 열심히 해야겠죠."
발문:"어머님은 그전에 저를 보시면서 '괜찮은데, 왜 아직 결혼을 안 했을까?' 하고 궁금해하셨대요. 결혼을 결정하고 나서는 어머님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걱정되더군요. 다행히 어머님은 사랑을 우선으로 생각하시는 분이라, 반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