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으로 대본이 쏟아지는 주말드라마 출연을 중심으로 영화 개봉에 뮤지컬, 에세이 출간까지. 인터뷰를 나눌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는 바쁜 그이지만, 기자로서 그를 꼭 만나야 할 시점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나이 마흔에 제대로 물오른 남자 유준상의 전성시대니까.
유준상의 책 출간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드디어 나왔군.’
배우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지만, 그가 가진 재주와 재능은 한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보기에는 불공평하다 싶을 정도로 그 종류와 분야가 방대하다. 연기는 기본이요, 뮤지컬과 연극 등을 통해 우리는 그의 음악적 재능과 춤 실력을 확인했다.
이뿐 아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다룰 줄 알며 여행을 좋아한다. 그가 대중에게 보여준 달란트는 끝이 없어 보인다.
대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생활인으로서의 점수는 낮은 편인데, 희한하게도 유준상은 가정에도 충실하다는 점까지 인증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드라마 등 작품에 투영된 이미지가 실제와 다르거나 왜곡된 게 아니라는 점에서 다른 배우들과의 차별성을 갖는다. 말하지 않아도 곳곳에서 묻어나는 그만의 따뜻한 아우라. 그의 아내인 배우 홍은희가 전하는 그의 모습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신빙성은 더욱 높아진다.
‘유준상스럽다’는 말이 ‘착하고 능력 있고 따뜻한, 엉뚱하면서도 매력 있는 남자’를 뜻한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당분간은 없으리라고 본다.
자연인으로서, 또 생활인으로서 삶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그가 본인이 직접 쓴 글과 그림을 엮어 책을 냈다. 이건 어쩌면 그의 개인적인 역사 안에서 봤을 때 자연스러운 사건. 이 자연스러운 사건 덕분에 요즘 최고로 바쁘다는 유준상 인터뷰 자리가 마련됐다.
20년간 매일 써온 배우일지, 《행복의 발명》
저자가 된 국민배우 유준상의 얼굴에서 책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대학교 1학년 기초연기 첫 수업시간, "배우는 배우일지를 써야 한다. 그날의 몸 상태를 적어보고, 시도 쓰고 그림도 그려야 한다"는 은사 안민수 교수의 말에 감동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썼고, 그중 일부를 발췌해 완성된 책이다.
“그때부터 매일 쓴 일기장이 쌓여 지금은 스무 권이 넘어요. 연기를 배우면서 느낀 점, 새로 떠오른 아이디어 등을 20년 동안 매일매일 글로 풀었어요. 그림도 그리고요. 이게 책으로 엮여 나오니 감회가 새롭네요. 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까요.”
차분하게 본인의 책을 소개하는 작가 유준상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쑥스러워 하면서도 할 말은 또박또박 전하는 그의 말투도 여전하다.
그의 일상은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유독 특별하고 재미있어 보인다. 삶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와 자세 때문이다. 그는 행복을 발견하려고 하지 않고 발명하려고 한다. 평범한 일상도 조금 엉뚱하게 바라볼 때,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행복한 일상이 된다는 것을 안다. 유준상에게는 일상의 영역을 세계 각지로 넓힐 줄 아는 폭넓은 시선이 있다.
“제 발자취죠. 원고지에 쓰기도 하고 노트에 쓰기도 하면서 모았습니다. 예전에 쓴 글이라 지금 읽으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한 남자, 한 인간으로서의 내면이 담겨 있어요.”
‘일기를 정리했다’고 다소 싱겁게 표현을 하지만, 그의 글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도 쓸 정도로 실력도 수준급이다. 출간된 책은 아직 없지만, 작품은 벌써 세 개나 완성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을 내고 싶어요. ‘박람회장’, ‘아빠는 깁스 중’, ‘꿈의 동반, 2001~2004’라고 제목도 미리 정해놨죠.(웃음) 이 중에서 ‘박람회장’이 가장 빨리 나올 수 있는 책이에요. 몇 년 전 캐나다와 쿠바를 여행하면서 쓴 글입니다.”
‘어른이 읽을 수 있는 동화’라는 사실에서 느껴지듯이, 그는 어른을 위한 책을 통해서 사람들과 교감하고 싶어 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고 간 흔적 때문이다.
“예전에 집에 있던 책을 넘기다가 우연히 아버지가 쓰신 메시지를 발견한 적이 있어요. 제가 20대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언젠가는 제가 그 책을 볼 거라고 생각하셨던 거죠. 저도 제 아이들이 보길 바라는 마음에 책에 메시지를 남겨두곤 합니다. 영원히 안 읽을까 봐 걱정이지만요. 하하. 그래도 이 책은 이렇게 나왔으니까, 언젠간 보겠죠?”
책 판매 수익금은 전액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배우라는 재능 외의 것으로 이룬 일이라서 좋은 곳에 쓰고 싶단다. 그는 이미 1년 전부터 “작가 수입료는 아이들을 위해 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방귀남'이라는 완벽한 남자
그가 연기하는 의 방귀남 캐릭터는 '완벽한 남자'라는 극찬을 받으면서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많이 부담스럽지만, 행복하게 간직하려고 흐뭇해하고 있습니다. 감사해하고 있고요.(웃음) 요즘은 길을 지나가면 초등학생 아이들이 ‘방귀남이다!’ 하면서 쫓아와요. 아이들이 쫓아오기는 쉽지 않거든요. ‘아저씨!’ ‘오빠!’ 이렇게 부르기도 하고요. 이런 모습들이 정말 사랑스러운 거죠, 나이 마흔에…. 종영될 때까지 행복하게 하고 싶습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드라마 속 그의 캐릭터는 ‘완벽한 남자’다. 남편으로서 다정다감하고, 아들로서 속 깊고 든든하게 효자 노릇까지 제대로 한다. 외국으로 입양되었지만, 바르게 자란 만점짜리 인물이다.
“어린아이들이 귀남이를 통해서 예의범절을 배운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른들이 ‘방귀남 아저씨처럼 인사 잘하라’고 얘기한대요. 저희 드라마가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말이겠죠. 드라마가 끝나는 시간까지 방귀남으로서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현실에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실제 유준상은 방귀남과 비슷한 점이 꽤 많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귀남이가 할아버지 제사 때 편지를 써서 읽어주는 장면은 유준상의 실제 모습과 닮았다. 그의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는데, 기일마다 그는 아버지께 편지를 쓴다고 한다. 난초를 그려서 보여드리기도 하고 글을 써서 읽어드리기도 하는데, 드라마 속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작가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고.
칸 영화제 세 번 다녀온 영화배우 & 뮤지컬 배우
알려진 대로 유준상은 지난 5월 홍상수 감독과 함께 프랑스 칸에 다녀왔다.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가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것이다. 수상은 못 했지만, 영화배우로서 그의 위상을 재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그의 인기를 반영하듯, 한 극장에서는 유준상을 조명한 영화기획전을 준비했다. 유준상이 출연한 홍상수 감독의 작품이자 모두 칸 영화제 진출작인 , , 를 비롯해 노희경 작가 원작, 민규동 감독 연출의 등을 극장에서 다시 감상할 수 있다.
7월 20일부터는 뮤지컬 를 통해 다시 뮤지컬 무대에 설 예정이다. 그는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수사관 엔더슨 역을 맡았다. 드라마와 영화의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도 고향으로 생각하는 뮤지컬 복귀를 결심했다. 유준상은 뮤지컬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대단하기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황정민과 함께 강우석 감독의 신작 영화 에도 캐스팅되었다. 이렇게 분야를 막론하고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데는 그가 그림, 악기 연주, 작곡, 춤 등 재능을 보이는 분야가 넓어서다.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계속해오다 보니, 이렇게 다양한 재주가 생겼다.
“연기 말고도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어요. 노래, 춤, 글, 그림, 악기 등등 다 놓치고 싶지 않았죠. 한 우물만 파야 성공한다고 말씀들 하시는데,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하고 배우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것을 쉬지 않고 찾으면서 2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보니, 결국 모든 것이 ‘배우’라는 하나의 지점으로 모아졌다. 그는 글쓰기뿐 아니라 그림, 악기 연주, 작곡에도 욕심이 많다. 피아노는 20년째 치고 있고, 바쁜 와중에도 손이 굳지 않도록 꾸준히 연습 중이다. 출판기념회가 끝난 후 카페에 마련된 피아노를 보고 즉석에서 연주를 들려줄 정도로 실력은 수준급이다. 현장에 있던 기자를 놀라게 했던 것은, 그가 연주한 곡이 직접 작곡한 곡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출간이 꿈
책 출간을 기념하여 마련된 인터뷰 테이블. 다시 '저자' 모드로 돌아왔다. 그는 이번 책을 통해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고,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앞으로도 잘해보자는 파이팅의 기운을 느꼈다고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매일매일 일기는 쓸 것이다.
저자로서의 앞으로 꿈을 물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출간하고 싶어요. 만약 제가 다음에 책을 또 낼 기회가 있다면,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연의 모든 것들에 이름을 지어줘서 자연을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이야기요. 《행복의 발명》 마지막 부분에도 소개를 했는데요. 세 작품 정도는 완성이 된 단계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영락없는 소년이었다. 세상에 대한 동경의 마음이 두 눈에 고스란히 들어 있는 불혹의 소년.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진정 즐기면서 살아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경지. 본인의 직업인 ‘배우’라는 글자 앞에 ‘국민’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버린 유준상의 지금. 넝쿨째 굴러들어온 불혹의 행복은, 유준상이 20년간 꾸준히 쌓아올려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이다.
발문:“예전에 집에 있던 책을 넘기다가 우연히 아버지가 쓰신 메시지를 발견한 적이 있어요. 제가 20대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언젠가는 제가 그 책을 볼 거라고 생각하셨던 거죠. 저도 제 아이들이 보길 바라는 마음에 책에 메시지를 남겨두곤 합니다. 영원히 안 읽을까 봐 걱정이지만요. 하하. 그래도 이 책은 이렇게 나왔으니까, 언젠간 보겠죠?”
자료제공 도서출판 열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