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시장 이야기
김종광 지음|샘터|280쪽|1만4800원

"30~40년, 심지어 50년 터줏대감 상인들이 수백명이다. 몇 년 가게를 했던 이는 수만명, 점원이었던 이는 수십만명, 옷감을 사거나, 배달을 하거나, 버스 안내양이나 수납 은행원으로 이러저러하게 드나든 이는 수백만명일 터다. 그들과 그 아들딸들에게, 광장시장 말고 또 어디가 고향일 수 있겠는가."(254쪽)
1905년 화폐 개혁으로 조선 돈이 휴지조각이 되자, 진고개(지금의 명동)를 점령하고 있던 일본 상인들은 종로를 넘봤다. 조선 상인들은 종로와 동대문을 지킬 새 시장을 논의한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올해로 107년째 서울 종로 5가에 이어져 온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상설시장, 광장시장이다.
시장의 역사와 사람들 이야기가 15편의 꽁트로 담겼다. 체코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국가대표팀과 상인들의 삼겹살 회식 이야기에는 냉전이 한창이던 1967년 풍경이, 시골에서 갓 상경해 춤바람난 소년 이야기에는 서울시내 아줌마들이 장바구니 들고 모여들던 광장카바레의 모습이 생생하다. 식당 밥을 나르며 시를 썼던 소녀 '밥순이 시인', 시장 점원과 소년 전태일의 우정 등 시장통을 살아간 사람 이야기들이 때론 정답고 때론 눈물겹다.
지나친 홍보성 글과 멘트는 눈에 거슬린다. 가업(家業)을 자랑하는 경영자 인터뷰나, '강호동의 '1박 2일' 팀이 다녀간 뒤 먹자골목의 메카로 떴다'는 식의 문구들은 없어도 좋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