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펴면 ‘안철수의 여론조사 지지율’, ‘안철수의 행보’, ‘안철수의 말’에 대한 기사가 연일 쏟아진다. 대선은 6개월 앞으로 다가왔는데 정작 본인은 말이 없다. 지지율을 조사해보는 것도, 용단을 내리라 재촉하는 것도 바깥 사람들이다. 안철수의 안사람, 김미경 교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대학로 서울대의대 캠퍼스에서 수업을 앞둔 김미경 교수를 만났다.

6월 18일,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차기 대선후보의 지지율을 발표했다. 박근혜 38%, 안철수 20%, 문재인 10%. 1위인 박근혜 새누리당 전 대표와 3위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각 당의 유력 대선주자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다른 두 후보와 다른 점은 소속이 없다는 점 외에도 ‘대선 출마를 공식 발표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여론조사는 그를 호명하고 지지율 순위에 포함시킨다. 때로는 1위인 박근혜 후보를 위협할 정도의 박빙 승부를 펼치기도 하고, 그러다 격차가 벌어지면 ‘安風(안철수 바람) 멈추나’식의 기사가 쏟아진다. 당사자의 의중은 그가 유일하게 입을 여는 대학 강연를 통해 짐작할 뿐이다. 가장 최근에 남긴 말은 “만약 정치를 하게 된다면 과연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게 도리”(부산대 강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다. 여당과 야당, 시민단체와 언론 등 여기저기에서 어서 뜻을 밝히라며 다그치는 지금, 그와 가장 가까이 있는 부인 김미경 서울대의대 교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대학로 서울대의대 캠퍼스에서 김미경 교수를 만났다.

좋은 기회에 이야기 나눠요

만남은 쉽지 않았다. 현재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부교수와 서울대학교 교수를 겸하고 있는 김미경 교수는, 서울대 관악캠퍼스와 연건(대학로)캠퍼스를 오가면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일주일에 몇 번은 대전의 카이스트에서도 수업을 한다. 김미경 교수가 가르치는 과목은 ‘연구윤리’. 의학과 법학을 두루 공부한 그는 특허, 상표, 저작권 등 지적재산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를 만난 건 1학기 기말고사를 맞아 길을 걸으면서도 책을 읽는 학생들을 볼 수 있던 어느 늦은 오후였다. 김 교수의 연구실은 법의학과에 있었다. 연구실 앞은 고요했다. 안철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기사가 되는 바깥세상과는 차단된 듯 ‘안철수의 아내’가 아닌 ‘교수’ 김미경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은 가끔씩 전화 벨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아름다울 미(美), 밝을 경(暻), 김미경 교수의 이름이 적힌 연구실 앞에 섰다. 가볍게 노크를 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연구실 문을 열고 김미경 교수가 나타났다. 검은 투피스 정장에 회색 웃옷을 입고 빨간 뿔테 안경을 쓴 그는 기자가 서 있는 문 앞으로 다가왔다.

“여러 번 연락 주셨다는 말씀 들었어요.”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김미경 교수는 사진을 통해 봤던 모습보다 훨씬 앳되고 체구가 크지 않았다. 입은 옷이 헐렁해 보일 정도였다. 염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둔 머리에는 흰머리가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먼 길 오셨는데 미안합니다. 지금으로선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없네요.”

그리고 금방 덧붙였다.

“아, 그렇게 멀지는 않으시네요.”

기자가 건넨 명함을 보고 주소를 확인한 그는 다행이라는 듯 처음으로 엷게 웃었다. 안철수 부부의 언론 관련 일정을 담당하는 안랩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머지않아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히시지 않을까 싶다”고 이야기 했었다. 김 교수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중에 준비가 되면요. 좋은 기회에 이야기 나누면 좋겠어요.”

닮은 꼴 부부 안철수·김미경

김미경 교수를 만난 후 며칠간 ‘안철수 원장이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할 때가 되었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원장과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손학규 후보는 ‘검증이 안 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으며, 최근 선출된 이해찬 대표는 “더 늦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철수의 삶과 경영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안랩 출신 박근우 씨의 책 《안철수 He, story》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결정은 혼자 오래 고민해서 내리는 편입니다. 대신 기준은 늘 같았어요. 나에게 의미 있고, 내가 계속 열정을 갖고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제 아내는 저와 신념과 가치관이 비슷해요. 가톨릭학생회 봉사활동에서 만났는데, 돈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저랑 같았어요. 특히 돈 더 많이 벌고 더 안정적인 거 따지기보다는 좋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는 직업관도 똑같았죠.”

안정을 추구할 시기에 다시 불확실한 학문에 도전했다는 점, 전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학문 간의 융합을 추구했다는 점도 두 사람이 닮은 점이다. 실은 닮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 때, 그 마음을 지키게 해준 유일한 지원군이 서로였기 때문이다.

“법학을 공부하고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같은 사람을 한국 사회가 받아들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학제 간 융합이 필요하다면서도 법대에서는 법학 공부에 올인할 사람을 찾고, 의대에서는 의학에 올인할 사람을 찾으니까. 카이스트로 가기까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쓸모없는 사람 될까 봐…. 남편이 위로가 많이 됐다. 남들이 안 하던 일,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을 했지만 그걸 완성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자신감을 얻었다.” (김미경 교수 언론 인터뷰 중)

김미경 교수는 서울대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과 교수로 15년 재직했다. 마흔이 되던 해, 의사를 관두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의사의 삶은 대중을 상대하는 것이고 여러 가지 법적 문제, 윤리적인 딜레마가 뒤따른다. 그런데 의대에서는 의료 분쟁, 법적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는 생각에 법학을 공부했다. 형편이 넉넉해서 유학을 떠난 건 아니다. 알려졌다시피 남편이 의사를 그만두고 운영하던 안랩이 처음 발명한 백신을 무료로 나눠줬다. 수익이 없을 때는 김미경 교수의 월급을  쪼개 직원들의 월급을 줬다. 매일 동전까지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고 정산하던 시절이다. 부부는 서울대의대 동창이다. 안 원장이 1년 선배다. 연인이나 남편으로서가 아니라 같은 의학도로서, 김미경 교수는 안철수 원장을 보며 ‘계속 공부하면 저 사람은 노벨상을 받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은 아무 말도 드릴 말씀이 없어요  

서울대의대 연건캠퍼스는 서울대학병원과 같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노벨상을 받을 줄 알았던 남편은 세상에 나가 있고, 김 교수가 남아 교단을 지키고 있다.

“뒷문은 잠겨 있을지 몰라요. 이쪽 코너를 돌면 유리문이 있어요. 그쪽으로 가시면 돼요.”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준 그 문으로 다음 수업에 들어가는 김미경 교수가 보였다.

남편이 어디 있는지 궁금할 때는 인터넷을 검색해본다는 부인, 의사를 그만두고 연구소를 차릴 때도 CEO를 그만두고 유학길에 오를 때도, 압도적인 지지율로 서울시장 당선이 유력하던 시기에 지지율이 10분의 1 정도이던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며 물러났을 때도, 김미경 교수는 묵묵했다. 묵묵히 남편 곁에 있었다. 안철수의 아버지 안영모 원장과 김미경 교수의 아버지이자 안 원장의 장인인 김우현 씨는 조심스레 “그의 성격상 정치에 뛰어들지는 않을 듯하다”고 추측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과 부인은 아무 말이 없다. 출마를 할지, 그러지 않을지. 아마 부인 역시 그날이 되어봐야 알지도 모른다.

“가족에게는 늘 미안해요. 군대 간다고 얘기도 안 하고 군대 간 것이 생각나요. (…) V3를 완성한 날이라 기억이 나요. 밤새 일하고 원고를 통신망에 보내고 열차 타고 곧바로 군대 갔어요. 다른 사람들은 전날 가족과 식사도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 저는 혼자 일만 하다가 군대에 가서 가족에게 미안했어요. 그리고 아내가 수술할 때 일하느라고 못 갔을 때도 미안했어요. 아내는 이성적으로는 이해해도 마음은 섭섭했을 거예요. 나중에 나이 들어 나를 버리고 갈까 걱정이에요.” (《안철수 He, story》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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