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형사지법은 혼숫감이 적다며 부인과 장모를 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서울대병원 의사 박모(30) 피고인에게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박 피고인은 지난해 3월 하모(23)씨와 중매결혼하면서 전세아파트 등 6500만원 상당의 혼숫감을 받았으나 '장인이 아파트를 안 사준다'며 하씨를 때리고 장모의 멱살을 잡아 구속됐다.'

1989년 9월 27일 본지 사회면에 실린 기사다. 집값과 예단을 둘러싼 갈등은 이처럼 과거에도 있었으나 판사·검사·변호사·의사 등 일부의 이야기였다.

지금처럼 모든 계층이 고통을 받게 된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이며, 갈수록 더 심해지는 추세라고 가정문제 상담자들은 입을 모았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최성애 HD가족클리닉 대표는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한국·중국·일본·인도·서구의 결혼 관련 사료(史料)를 분석해보니, 동서고금을 통틀어 예단 갈등이 심했던 사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더라"고 했다. 잉여와 격차다.

가령 한국은 1990년대 초반 '혼수 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집값·예단 갈등이 심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호황이 정점에 달하고, 서울 강남에 과소비하며 흥청거리는 '오렌지족'이 등장하던 시점이었다. 조선일보도 1990년 '한국병(病)'이라는 제목으로 각종 사회문제를 진단하면서 혼수 문제를 여러 차례 다뤘다. 그래도 당시는 일부 계층에 국한된 이슈였다.

최 대표는 "국가 전체가 너나없이 먹고살기 힘들 때는 오히려 혼수 갈등이 줄어든다"고 했다. 실제로 IMF 외환위기 직후 몇 년 동안은 집값과 예단을 둘러싼 갈등이 수면 아래로 내려앉았다.

이후 경기가 회복되면서 사태가 복잡해졌다. 나라 전체적으로는 경제가 좋아졌지만 계층 간 격차는 전보다 더 벌어졌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갑자기 자산이 몇 배 불어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갈린 것이 대표적인 예다. 잉여와 격차가 동시에 생겨나면서, 다시 한 번 집값과 예단을 둘러싸고 갈등이 극심해졌다.

최 대표는 "사회는 풍요롭지만 계층 간 차이는 크고, 그런 차이를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극복하기는 어려우니 '혼인을 통해 격차를 넘어보자'는 심리가 생긴다"고 했다. 일종의 '거래'로 변질되고 있는 우리나라 혼례문화의 바탕에는 이런 우리 사회 격차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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